## Gregory Currie (1989). *An Ontology of Art*. : Palgrave Macmillan UK.
> [!INFO]
> Type:: [[&]]
> Title:: An Ontology of Art
> Author(s): [[Authors/Gregory Currie]]
> Year:: 1989
> Tags::
> DOI:: 10.1007/978-1-349-20038-2
> Citekey:: currie_ontology_1989
> ZoteroURI:: [Open in Zotero: An Ontology of Art](zotero://select/items/@currie_ontology_1989)
> ReviewedDate:: [[2023-02-23]]
## C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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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ie_ontology_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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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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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file.aliases AS "Title" FROM [[@currie_ontology_1989]] and -"Plans" and -"re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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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 “There is less talk now of an 'intentional fallacy', and the claim that aesthetic appreciation can be isolated from the work's historical context is regarded with some scepticism […] But recent answers to this question fail, I think, to give this historical dimension its proper role. Ontology has failed to keep pace with epistemology in this area. My aim is to bring about a closer connection between the two.” (Currie, 1989, p. x)
이제 '의도적 오류'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었고, 미적 감상이 작품의 역사적 맥락과 분리될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최근의 대답은 이 역사적 차원에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온톨로지는 이 분야에서 인식론과 보조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제 목표는 이 둘을 더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 “all art works belong to the same ontological kind -action types” (Currie, 1989, p. x)
들어가는 챕터에서 [[Gregory Currie|Currie]]는 매우 분명하게 이 책은 아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하고 들어간다. 주 목적은 예술의 (위에 언급한 대로 인식론과 보조를 맞추는) 존재론을 진전을 이루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예술 작업은 인간의 행동–특히 actions of artists—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 “The first is to specify the kind of thing that art works are; the second is to specify the relation that things of that kind must bear to us in order for them to count as art works.” (Currie, 1989, p. 2)
아트를 정의하는 것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 첫 번째는 예술 작품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명시하는 것이고,
2. 두 번째는 예술 작품으로 간주되기 위해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명시하는 것이다.
아트를 정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두번째에 관심있어하고 글쓴이가 관심있어하는 것은 첫번째이다.
가장 먼저 [[Charles Sanders Peirce|Peirce]]가 나눈 types 와 tokens에 대한 해석이 있다.^[Peirce (1931-5), vol. IV, para. 537.] 여러 다른 페이지에 하나의 단어가 여러번 나타날경우.
단어 = type
여러번 나타난 것 = tokens(표시)
> “What is written on the page is never the type but always a token of the type.” (Currie, 1989, p. 3)
토큰은 물질적 기입이며 만들어지고 또 없어질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고 이를 통해 [[action-types]]과 [[action-tokens]]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들어 "나는 문을 연다 후에 나는 그 문을 다시 연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다른 행동이다. 이 두 행동을 다시 말하면 행위-양식의 두 행위-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Charles Sanders Peirce|Peirce]]의 이론을 바탕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접목시키는 명확한 설명은 [[Richard Wollheim]]의 [[@wollheim_art_2015|Art and its objects: With six supplementary essays (2015)]]에 나와있다. 이 이론에는
1. when put together, the elements seem to constitute a coherent and plausible theory of the nature of art works. Thus together the parts acquire a strength that they might not have in isolation from one another.
1. 우선, 요소들을 종합하면 예술 작품의 본질에 대한 일관되고 그럴듯한 이론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부품들은 서로 분리되어서는 가질 수 없는 힘을 함께 얻는다
2. while the elements of the theory are separable, I shall be arguing against all the elements; I shall not dismiss any part of the theory simply on the grounds of its association with other parts. Here is the theory
1. 이론의 요소들은 분리될 수 있지만, 나는 모든 요소에 대해 논증할 것이며, 단순히 다른 부분과의 연관성을 근거로 이론의 어떤 부분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종류의 작동되는 예술이 있다.
1. 페인팅이나 어떤 종류의 조각으로 → 물질적 오브젝트 physical object → 피카소의 Guernica? → 이런것들은 소유가 가능하다
2. [[Jane Austen]]의 [[Emma]]와 같은 작업이 있다 → 이 경우 복제들은 type의 token들이 될 수 있다 → 이 경우 token은 소유할 수 있지만 type은 소유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예술 작업의 경험을 할때의 물질적 concrete 것들을 다 "instance"라는 일반적 용어로 부른자고 지정한다. (예시, 엠마 카피, 어젯밤의 베토벤 심포니, 피카소의 Guernica) 수만가지의 무수한 셀 수 없는 수의 작업의 "instance"가 있을 수 있지만 페인팅이나 조각 같은 경우는 단 하나의 Instance가 있다. 즉, instance = work
문학 예술과 다르게 시각 예술에서는 authenticity (진실성)이 미적 가치의 결정 요인이다. (위의 이유로 단 하나의 instance가 존재하는 것) 그리고 글쓴이에게 authenticity는 예술가에 의해 독창적으로 생산된 물건이라는 속성. **그리고 글쓴이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공격한다.** → **어떠한 예술 작업도 물질적인 오브젝트가 아니다. (7)** → 모든 예술 작업은 [[action-types]] 이다 → [[Action Type Hypothesis]]
여기서 글쓴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는 두개의 존재론 적 duality가 없다. 즉 아티스트의 생산물과 생산된 예술 작업, 하지만 단 하나의 존재론적 카테고리가 있을 뿐이다. [[action-types]]
글쓴이가 거부하는 또 다른 duality는 가능한 사례 instance의 관점에서 작품의 종류 사이에 이중성이 있다는 주장: 멀티플 완성물 (음악 악보, 소설)이 있을 수 있는 것 (=multiple)과 instance가 하나만 존재하는 것 (페인팅 조각)(=singular)
따라서 글쓴이가 제안하는 이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일원론적이다.
- 예술 작품에는 오직 한 가지 종류만 존재한다,
- 예술 작품 자체와 그 인스턴스 사이에는 오직 한 가지 종류의 관계만 존재한다
이를 [[Instance Multiplicity Hypothesis]]라고 부른다
[[Instance Multiplicity Hypothesis|IMH]]는 [[Action Type Hypothesis|ATH]]을 수반하지 않는다. 반대도 만찬가지이며 어느 하나가 더 강하지 않다.
- [[Action Type Hypothesis|ATH]]는 모든 작업이 같은 카테고리에 속해있는가를 말해준다
- [[Instance Multiplicity Hypothesis|IMH]]는 우리에게 작업과 그 인스턴스와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작업 간에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Instance Multiplicity Hypothesis|IMH]]에 관련해서는 많은 글이 쓰여졌고 다수는 위조에 관한 글이다.
#### 예술의 존재론
> “We cannot understand what art is except by understanding how art works (the so called 'affective fallacy' to the contrary).” (Currie, 1989, p. 11)
> "예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지 않고는 예술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반대로 '정서적 오류'라고 불리는)."
그러므로 여기선 우리와 예술 작업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분석해본다.
#### [[EMPIRICISM]]
> “The theory I shall consider might be called 'aesthetic empiricism'. 'Empiricism' is the name we give to a family of philosophical theories which are united by their insistence that our theories and judgements must, if they are to be validated at all, be validated by the evidence of our senses.” (Currie, 1989, p. 17)
> "제가 고려할 이론은 '미적 [[empiricism|경험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mpiricism|경험주의]]'는 우리의 이론과 판단이 검증되기 위해서 우리의 감각의 증거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통합된 일련의 철학 이론에 우리가 부여하는 이름이다." (Currie, 1989, 17쪽)
경험론에서는 마치 예술 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표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지 보는 것 만으로 그림의 가치를 미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바로 문제를 직면한다.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무엇이 보일 수 있는가.
> “This turns out to be a tremendously difficult problem in the philosophy of mind and perception.” (Currie, 1989, p. 19)
> “If appearance counts for everything, then the copy of Guernica, as long as it looks right, ought to be as much an instance of that work as my correctly spelt copy of Emma is an instance of that work.” (Currie, 1989, p. 28)
#### [[Action Type Hypothesis|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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