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tadata: Title: Intellectuals and Power Full Reference: Type: Author(s): Michel Foucault, #Author/Michel Foucault Zotero Link: [Intellectuals and Power](zotero://select/items/@foucault_intellectuals_1980) Index: ## Summary: ## Notes: #LiteratureNotes - 푸코의 질문으로 시작, 마오이스트가 사르트르는 이해하기 쉽고, 푸코에 대해선 반쪽만 이해가고, 들뢰즈는 완전 수수께끼 enigma라고 한 것에 놀라 본인은 clear한데 왜 인지 물음 > (205) At one time, practice was considered an application of theory, a consequence; at other times, it had an opposite sense and it was thought to inspire theory, to be indispensable for the creation of future theoretical forms. > (이어서)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질문이 다른 시각으로 보입니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관계는 훨씬 더 편파적이고 단편적입니다. 한 쪽에서는, 이론은 항상 국부적이고 제한된 분야와 관련이 있고, 그것은 그것으로부터 다소 떨어진 다른 영역에 적용됩니다. 이론의 적용과 관련된 관계는 결코 닮은 점이 아니다. > (206) Practice is a set of relays from one theoretical point to another, and theory is a relay from one practice to another. - 푸코의 방식을 예시로, 구금 confinement 의 context 문맥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 시작, 특히 19세기 캐피탈 사회의 정신병 사일롬 (보호시설) 에 대해서 - 그리고 갖힌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말할 필요가 있음을 깨닳게 된다. - 그리고 감옥안의 그룹에 대해서 찾게 된다. (감옥에 갖힌 개개인들) - 그리고 GIP 그룹을 만듬. (프랙티스) - the object being to create conditions that permit the prisoners themselves to speak. 그 목적은 죄수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 즉 프랙티스로 옮겨갈 때 이론을 적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마오이스트의 이해다. - 들뢰즈가 보기에 푸코의 작업은 더 큰 구획 안에서, 이론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부품의 다양성 내에서의 하나의 릴레이의 시스템이다. - It would be absolutely false to say, as the Maoist im plied, that in moving to this practice you were applying your theories. This was not an application; nor was it a project for initiating reforms or an enquiry in the traditional sense. The emphasis was altogether different: a system of relays within a larger sphere, within a multiplicity of parts that are both theoretical and practical. - 푸코왈, 68 학생 운동때 지식인들은 학생들에게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a system of power 가 지식이나 담화를 막거나, 금지하거나, 무효로 하였고, 그것은 manifest authority of cencorship 에서만 찾을 수 있던 것이 아니라, societal network에서 드러나게 혹은 몰래 존재했다. - 그러므로 지식인들의 역할은 더이상 억제된 집합적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식, 진실, 인지와 담화의 구역안에서 오브젝트나 도구화하는 파워의 형태에 분투하는 것이었다.[[@foucault_order_1981]] - 그러므로 이론은 표현하거나 번역하거나 프랙티스에 적용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론이 프랙티스다. > (208) Deleuze: Precisely. A theory is exactly like a box of tools.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signifier. - 지식인의 목표는 그것 밖에 없나? > (213) These notions are far too fluid and require analysis. We should also investigate the limits imposed on the exercise of power—the relays through which it operates and the extent of its influence on the often insignificant aspects of the hierarchy and the forms of control, surveillance, prohibition, and constraint. - 누가 파워를 행사하는가? 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누가 다른 이를 이용하고 누가 이윤을 얻고 누가 관련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파워에 대해서는 여전히 너무 fluid and require analysis. - 또한 권력 행사에 부과된 한계, 즉 권력 행사가 작동하는 계전기 및 지배, 감시, 금지 및 제약의 종종 중요하지 않은 측면들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조사해야 한다. - 무엇이 파워를 가지고 있는가는 알기 어렵지만 누가 적게 가지고 있는가는 알기 쉽다. > (214-5) 이에 대한 들뢰즈의 대답 > 나는 감히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고 싶다. > 마르크스주의의 추진력은 본질적으로 이익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 즉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이해관계가 지켜지지 않는 사람들이 행동의 일부를 요구함으로써 기존의 권력구조를 엄격하게 지원할 수 있는가? > 아마도, 이것은 경제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투자의 측면에서 이익이 최종적인 해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가 지시하는 것보다 더 심오하고 확산된 방식으로 작용하는 욕망의 투자가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물론,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이익에 반하는 욕망을 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은 항상 따라오고 욕망이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지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 들뢰즈의 질문은 마르크스가 말한 이익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 문제점을 제기하며, 어떻게 이익이 제공되지 않는 입장의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명령할 수 있는가? - 그것은 아마 투자의 면에서(무의식적이건 경제적이건) 이익이 최종적인 해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 욕망에 대한 투자가 더 심오하고 확산된 방법으로 작동한다. - 푸코의 대답, 파시즘 시대에 대중들은 특정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기를 원하고, 그 사람들이 대중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대중을 희생시키고, 그들의 죽음, 희생, 학살을 감수하기 때문에 그들을 식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원할지도 모른다. - 지금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이러한 투쟁에서 파생되고 그것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지역, 지역, 불연속적인 이론들이 우리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발견하는 문턱에 서 있을 가능성이 있다. > (216) 들뢰즈의 다음 질문, the present revolutionary movement has created multiple centers, and not as the result of weakness or insufficiency, since as certain kind of totalisation pertains to power and the forces of reaction. > 우리는 어떻게 이 netoworks, the transversal links between these active and discontinuous points, from on country to another or within a single coun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