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에리크 로메르: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 마음산책. > [!INFO] > Type:: [[book]] > Title:: 에리크 로메르: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 > Author(s): [[Fiona Handyside]] > Year:: 2017 > Tags:: > DOI:: > Citekey:: handyside_erickr_2017 > ZoteroURI:: [Open in Zotero: 에리크 로메르: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zotero://select/items/@handyside_erickr_2017) > ReviewedDate:: [[2023-08-26]] ## Citation ```latex [@handyside_erickr_2017] ``` ## Related ```dataview TABLE file.aliases AS "Title" FROM [[@handyside_erickr_2017]] and -"Plans" and -"resources" ``` ## Summary - ## Annotation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영화를 리얼리티의 이데올로기적 ‘생산’ 형식으로 보는 시각을 강조하고 싶어했던 반면, 로메르는 영화가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을 기계적으로 ‘재생산’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p.10) 이러한 반대 성향은 둘다에게 상처를 입혔고 60-70년대의 반로메르 기류에서 그들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기까지 오랜시간 (2000년대부터 다시 로메르 인터뷰가 실리기 시작했다)이 걸렸다. (로메르는) 자신의 영화는 안정과 불안정, 부동과 변화 사이의 갈등으로서 읽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10) 그의 영화 철학에는 신학적이고 생태학적인 관점이 스며들어 있따. 그 관점에 따르면 영화 감독의 역할이란 (건축가나 화가가 그럴 법 하듯이) 세계의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기록 (그리고 보존) 하는데 있다 (12) 내가 인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부분은 변화는 것보다는 영속적이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며, 그점이 내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37) 영화가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능숙하다고 내가 말할 때는 삶 속의 존재를 의미해요. 잡지 기사나 TV화면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 날것의 현실을 위한 매개입니다. (53) 윤곽 (아웃라인) 보다는 형상을 부각하는 것과 (모델링) 더 관련이 많은 카메라워크 유형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빛을 사용하는 화가들 대상을 각각을 고립시키기보다는 빛에 빠뜨리는 화가들을 좋아합니다 (<mark style="background: #FF5582A6;">렘브란트 터너 세잔</mark>) (63) 내 의견으로는, 시네아스트들이 원근을 없애고 평평하게 (1차원적 공간을 3차원으로 재현하는 문제에 대해) 하려고 시도할때마다 족족 실패했어요.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지를 양식화 할 거면 사진이 아니라 무대를 이용하기로 결정했죠 […] 3차원의 부재를 그 3차원의 과장에 의해, 말하자면 평면을 곡면을 통해 도출한다는 구상을 했어요. […] 전체 무대를 반원경으로 휘게 만듬으로서 케릭터가 직선으로 나아갈때 실상 그의 걸음은 곡선을 그리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97-8) (희극과 격언 영화에 대한 대화중) 소설들이 영화화된 결과를 보고 정말 실망하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보여지고 축소되어야만 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나는 <mark style="background: #FF5582A6;">영화적 미장센이라는 것이 축소보다는 확장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발화되는 순간 매우 짧은 그 무엇인가의 삶을 연장해야한다고 믿습니다.</mark> (105) 나는 현재의 35밀리 컬러 촬영이 지나치게 아름답고 지나치게 매끄러우며 지나치게 빛난다고 생각해요 […] 내 생각에 파리의 색들은 한풀 누그러뜨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촬영이 다소 거칠게 보일지라도, 영화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색의 통일성이 존재해요. (114) 일반적으로 두 유형의 영화감독이 있다고 생각해요. 화가와 건축가죠.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이미 공간이 존재한다고 보는이들이 있고, 촬영을 하면서 공간을 창조하는 실제 공간과 더 이상 아무 관련이 없는 공간을 구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140) 건축가: 그들에게 목표란 기존의 공간을 우리의 눈앞에 살아있게 만드는 것, 즉 사물들 간의 거리와 관계들이 실제 시계와 닮은 공간이 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예시: 프리츠 랑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에리크 로메르) 화가: <mark style="background: #FF5582A6;">어떠한 공간이냐 정의에 따라 달라질 듯</mark> (아마추어리즘 극소수의 스태프들과 작업하는 로메르의 이야기, 방식과 배우들의 제스처에 대한 이야기) (브레송이 질서정연함과 몸짓의 극단적 절재를 통해 이런 몸짓의 언어와 싸우려한 반면) (로메르는)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불편을 야기하거나 무의식적인 지나친 몸짓을 통해 그에 대항해 싸우려고 합니다 […] (지시없이) 배우가 대사에 심취한 나머지 몸짓이 절로 따라오는 것을 선호합니다 […] 바로 그런 이유로 1:33 (4:3) 비율에 16밀리 카메라로 거의 직각의 프레임으로 촬영하는 것을 선호하죠. 그럼으로써 배우의 몸짓을 더 효과적으로 과시할 수 있거든요. (241) 아마추어 주의의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거기 (이미지의 빈곤 이미지의 단순함)에 있어요. 관객들 각자가 스스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세계로 그들을 초청하는 내 방식이에요. 16밀리 여상, 소수의 인물, 카메라 움직임의 부재 등 거의 ‘가족 영화’ 홈 무비 같은 것이죠 […] 카메라 움직임은 마찬가지로 특정한 영화 철학에 맞아 떨어지죠. 그 철학이란 "트래킹숏으로 뛰는 말을 찍는 것은 머춰 선 말을 찍는 것이다." <mark style="background: #FF5582A6;">불필요한 카메라 이동이나 존재감을 지양</mark>하는 것을 뜻함 라고 한 콕토에게서 온 것이에요. Q: 사실 감독님께 생태 환경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영화적인 문제입니다. 풍경, 들판, 나무를 보호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름에 가장 강렬하게 기록되는 것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죠. 그것은 또한 우리를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회귀하게 하는, 장소의 존재론적 힘을 옹호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잠수함의 깊이를 옹호하는 (앙드레 바쟁이 1950년대 말 쿠스토의 영화 <세계의 침묵>에 대해 쓴 평론의 내용을 인용했다) 쿠스토 감독과 어느 정도 비스샇ㅂ니다. 바쟁도 그 깊이를 영화하 보여줄 수 있는 정수라고 여겼죠. A: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자체가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샘솟아요. 바로 그것이 항상 바쟁식의 영화 개념으로 나를 이끄는 요소죠. 그런 영화 개념이란, 사물들의 기계적인 기록이 영화의 힘이며 영화는 예술이기 이전에 기계라는 것입니다. 반면 미술은 전환하고 묘사하는 은유를 사용하며, 풍경을 기록하기보다 재현해야만 하기에, 미술의 힘은 상상의 힘으로 나를 더 성가시게 해요 […] 내가 영화를 사랑하도록 인도한 것은 자연이며, 그런 이유로 나는 다른 모든 예술보다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 영화가 풍경을 약탈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23B24429-3F3E-4DCE-8E4F-6631EF1B13A9.png]] ### Related ```dataview LIST FROM [[@handyside_erickr_2017]] and -"Plans" and -"resour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