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tadata: Title: A Cultural Genealogy of The Glass House: Reading Eisenstein with Benjamin Full Reference: Type: #Article Author(s): Soo Hwan Kim, #Author/SooHwanKim Zotero Link: [A Cultural Genealogy of The Glass House: Reading Eisenstein with Benjamin](zotero://select/items/@kim_cultural_2021) Index: ## Summary: - 두명의 이론가를 분석한다고하지만 실질적으로는 [[@bulgakowa_eisenstein_1996]] 와 [[@buck-morss_dialectics_1989]] 의 비교읽기 일듯 - 글래스 하우스 시작으로 영국 만국박람회와 유리정원에 영향을 받은 그 시기적 관련 글들을 나열. - 유리건축의 러시아 계보학 - 에이젠슈테인에게 있어서 유리건축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 비전에 관한 이야기 -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 사이의 연결점은 다른 지인들로 연결된다. - As is immediately clear in the oft-cited passage above ("Reply to [[Oscar A. H. Schmitz]]" (1935), the position of seeing cinema as a special "arsenal of perception" that can awaken revolutionary potential is a sure link between Benjamin's film (or media) theory and Eisenstein. - 위 구절만으로 곧장 확인되듯이, 영화를 혁명적 잠재력을 일깨워줄 수 있는 각별한 ‘지각의 병참(arsenal)’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벤야민의 영화 (매체)론을 에이젠슈테인에게 연결시키는 확실한 연결고리에 해당한다. - 영화적 지각이라는 고리를 통해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을 교차시키는 방식은 한계를 가진다. - The problem is that connecting the two figures through the link of cinematic perception has many limitations. - 그러므로 "내다보는 역사가 아닌 돌아보는 역사" 라는 특징적인 사유방식 - 벤야민: "a construction of history that looks backward, rather than forward." ([[@buck-morss_dialectics_1989]], 83) - 에이젠슈테인: concept of "regression" "예술적 형식이 지닌 호소력에는 유년기나 전근대의 문화적 관심이라는 잔재가 포함"되어 있는 바, "사회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계급 없는 관람이라는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퇴행적인 호소력이다." ([[@rosen_eisensteins_2017]], 480-487) - #comparativeReading - 독일에서 러시아로 연결될 수 있는 유리건축 신화의 유토피아적 차원은 1920년대 중반에 소멸한다. - 이 연결은 타우트와 에이젠슈테인 - 실험적 아방가르드로 대변되는 1920년대와 스탈린식 예술통치가 본격화되 는 1930년대의 ‘사이’에 놓인 이 시기는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그것을 대체하게 될 또 다른 시대가 목전에 이른 상황, 크라카우어의 표현을 빌면, “끝에서 두 번째 세계”로서의 “대기실의 풍경”에 해당한다. 1920년대 중후 반 소비에트는 모든 면에서 ‘중간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문턱의 시공간이었 다. 크라카우어 지그프리드, 『끝에서 두 번째 세계』,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2. ## Notes: #Literature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