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e Jin Kyung (2002). *Nomadism I*. Seoul: Humanist. ### Chapter 5 Sign System로 ### Chapter 4 언어의 공준에 대한 비판 **언어학의 공준들**/들뢰즈-가타리의 비판 1. *언어활동(language: 소쉬르의 정의 -> 랑그와 파롤의 합)은 정보적이고 소통적이다.* 1. 들뢰즈/가타리에게 언어활동의 본질은 정보의 전달 혹은 의사소통에 관계한 것이 아니라 "명령"이다. 2. 핏줄이 있기에 피가 흘러갈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핏줄이 피로 인해서 흐름을 만들 수 있다 (2017 메모) 3. 언어활동의 기초단위인 언표(utterance)는 명령어다. 4. 소쉬르를 시작으로 시작된 기호학은 언어 이외의 것들을 기표로 환원하고 그것이 기의를 갖도록 조직되는 방식을 언어를 보델로 한 '기표의 물질성'과 같은 개념으로 표시했다. 그러므로 '기표'는 '의미'를 표시하는 것, 의미와 관계되어 '기의'와 짝을 이루어서만 성립될 수 있었다. 5. 들뢰즈/가타리에게 '언표'란 일종의 명령이 언제나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석판'이란 단어에는 '이것은 석판이다'가 아니라 '석판을 줘/치워'의 명령이 담겨 있으며 그것이 실질적 의미이다. 2. *외생적인 어떤 요인에도 호소하지 않는 언어(langue: 어휘나 문법등의 사회적 규약)라는 추상기계가 존재한다.* 3. *언어를 항상 하나의 동질적 체계로 정의할 수 있게 해주는 [[homeostasis|항상성]] 내지 보편성이 존재한다.* 1. 들뢰즈/가타리는 언어활동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추상기계란 변수 내지 변인들의 체계라고 본다. -> [[William Labov]] 2.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의 언어(친구의 언어 혹은 공적 언어)에서 다른 언어의 사용으로 넘어간다. 3. 그러므로 언어활동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음색과 음조, 음고, 표정 등의 연속적인 변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활동으로 포착하는 것 = 일반화된 반음계주의(General Chromaticism) 4. *다수적인 내지 표준적인 언어라는 조건 아래서만 언어는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 #### 화용론적 접근 기호이론 화용론**Pragmatics**적 관점에서 언어학적 추상기계를 제시하는 들뢰즈/가타리. 화용론이 언어의 외부적 요소들 즉, 대화 맥락, 문화, 사회 등 언어외적인 영역을 개입시키는 것처럼, 들뢰즈/가타리는 언어의 내적 성분을 정의하는 것이 외부적 요소라는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언어란 변이의 연속체== #Comments 이러한 것은 하지만 ontological approach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혹은 외부를 통해 내부를 정의 한다는 것은 과연 [[Ontology]]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기호들에 대한 접근은 두가지가 있을 수 있다. 1. Semiology (기호학): 모든 것 -> 기호 -> 기표 -> 언어 (의미화 체제) 1. 소쉬르 바르트, 라캉, [[Jean Baudrillard|보드리야르]] 2. Semiotics (기호이론): 퍼스 **지도그리기** 기호제체란 개념은 정치학적 언어학의 입장에서 기호나 언어를 다루는 새로운 이론을 시도한다. 흔한 기호체제들을 구별하여 언제나 혼성적인 언표행위의 배체를 분석하기 위한 참조점을 구성한다. **기호체제의 개념** > 특정한 표현의 모든 [종류의] 형식화(formalisation)를, 최소한 그 표현이 언어적인(linguistic) 한에서 기호체제 (regime of signs)라고 부른다. 하나의 기호체제는 하나의 기호계 (a semiotic)을 이룬다. (MP, 140; I, 118) ([[@deleuze_thousand_1987]], 111) 여기서 기호계는 한 종류의 집합. 라캉은 이렇게 상징적인 것의 구조화된 질서를 ‘The Symbol’이라고 부른다 -> 하나의 계를 이룬다. 여기서 라캉과 들뢰즈/가타리의 차이는 le 와 une (다른 종류의 기호계들에 대한 가능성을 표현) **네 가지 기호체제** 1. 기표적 내지 의미적, 의미화하는 (signifying/signifiante) 1. 어떤 기호가 연관된 다른 기호들의 관계 속에서 그것에 고유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을 의미작용 (signification) 내지 의미화 (signifying/signifiance) 2. 전기표적 내지 전-의미적 (pre-signifying) 3. 반기표적 내지 반-의미적(Conter-signifying) 4. 탈기표적 내지 탈-의미적(post-signifying) #### 4가지 기호체제 -> 발생적 성분 generative components 4가지의 기호체제는 언제나 혼성과 변환의 양상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하의 기호체제는 "발생적 성분"이라고 들뢰즈/가타리는 말한다. > Pragmatics, then, already displays two components. The first could be called generative since it shows how the various abstract regimes form concrete mixed semiotics, with what variants, how they combine, and which one is predominant. ([[@deleuze_thousand_1987]], 139) ##### 1. 기표적 내지 의미적, 의미화하는 (signifying/signifiante) 여기서 의미화(signifying)란 기표들의 소급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특정한 방식을 내포한다. 아이콘(유사성의 연관)이나 인접성 연관을 가지는 지표(index)와 다르게 언어적인 기호 혹은 기표적인 기호는 탈영토화되어 있는 기호이다. 기표란 그 자체로 아무 의미도 없다. 그리고 “기표는 얼굴로 재영토화된다.” 기표는 언제나 안면화된다. > The face is the Icon proper to the signifying regime, the reterritorialization internal to the system. The signifier reterritorializes on the face. The face is what gives the signifier substance; it is what fuels interpretation, and it is what changes, changes traits, when interpretation reimparts signifier to its substance. ([[@deleuze_thousand_1987]], 115) #Comments 들뢰즈의 이 말은 [[Lisa Feldman Barret]]의 책에서 말한 감정이 어떻게 regime적으로 구성되는 가에 대한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얼굴 또한 하나의 기표로 비어있는 기표를 다른 기표가 대신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비어있는 얼굴을 다른 기표계가 탈 영토화되어 재영토화시키는 것일까? [[@barrett_how_2017]] **8개의 signifying regime 원리** ([[@deleuze_thousand_1987]], 117) 1. 기호는 다른 기호로 무한 소급 (무제한성) the sign refers to another sign, ad infinitum (the limitlessness of signifiance, which deterritorializes the sign); 2. 기호는 기호로 환원 (기호의 순환성) the sign is brought back by other signs and never ceases to return (the circularity of the deterritorialized sign); 3. 기호는 하나의 원환에서 다른 원환으로 비약, 중심을 바꾸고 그 중심에 일치시킨다 -> **원환적인 조직화** (기호의 메타포 내지 히스테리) the sign jumps from circle to circle and constantly displaces the center at the same time as it ties into it (the metaphor or hysteria of signs); 4. 원환의 확장은 기의 제공하고 기표를 남아돌게 하는 해석에 의해 보장된다. (사제의 해석) the expansion of the circles is assured by interpretations that impart signified and reimpart signifier (the interpretosis of the priest); 5. 기호의 무한한 전체는 결핍만큼이나 과잉으로 자타나는 지고(supreme)의 기표로 소급된다. (전제군주적 기표, 체계의 탈영토화의 극한) the infinite set of signs refers to a supreme signifier presenting itself as both lack and excess (the despotic signifier, the limit of the system's deterrito-rialization); 6. 기표의 형식이 실체를 갖거나, 기표가 얼굴이라는 신체를 갖는다. (재영토화의 안면성)==the form of the signifier has a substance, or the signifier has a body, namely, the Face== (the principle of faciality traits, which constitute a reterritorialization); 7. 체계의 탈주선은 부정적 가치를 할당 받음, 기표적 체제의 탈영토화력을 넘어선 것으로 단죄 (속죄양의 원리) the system's line of flight is assigned a negative value, condemned as that which exceeds the signifying regime's power of deterritorialization (the principle of the scapegoat); 8. 비약과 규제된 원환, 예언자적 규칙, 안면화된 중심의 공공성, 탈주선의 취급, 모두에서 그것은 보편적인 속임수의 체제다. **the regime is one of universal deception**, in its jumps, in the regulated circles, in the seer's regulation of interpretations, in the publicness of the facialized center, and in the treatment of the line of flight. ![[Screenshot 2022-01-26 at 12.05.52.png]] 1. 중심 대문자 기표 = 신의 얼굴, 전제군주의 얼굴 2. 사제, 사원 혹은 궁전 3. 원환적인 조직화 원환에서 다른 원환으로 옮아가기 4. 기의를 향한 기표의 해석적 전개(발전) 다른 기표 재공급 5. 숨을 다한 양, 탈주선을 막는 방책 6. 속죄양, 탈주([[@deleuze_thousand_1987]], 117) -> 한계지점까지 달려간 양을 표시 -> 한계지점을 표시 7. 선의 부정적 기호 ##### 2. 전기표적 내지 전-의미적 (pre-signifying) 원시적이라고 간주되는 presignifying은 안면성으로의 환원이 없는 기호 없이 작동하는 '자연적' 코드화에 훨씬 가깝다. > First, the so-called primitive, presignifying semiotic, which is much closer to "natural" codings operating without signs.([[@deleuze_thousand_1987]], 117) 이 글에서 예시로 든 것은 사냥하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 인디언들 (인디언의 복음 The Gospel of the Redman) 혹은 첫 사냥감을 죽인 후 그 작은 털을 뽑아 나무에 묻는 행위, 또한 그 첫 사냥물을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를 통해 사냥한 동기가 호의와 존경심이라는 감정을 갖게하는 것 ^[“베어하트, 형선호 역,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The Wind is My Mother)》, 황금가지, 1999, 34~35쪽.”] ##### 3. 반기표적 내지 반-의미적(Conter-signifying) 유목민적 군대적 탈영토화된 기호체제 혹은 암호화 이러한 기호체제는 유목민적 탈영토화되어있어 총체를 이루기보다는 배열(arrangement)을 이루며 국가장치에 반하여 유목적 전장기계의 기호계에 속한다. ([[@deleuze_thousand_1987]], 118) ##### 4. 탈기표적 내지 탈-의미적(post-signifying) 탈주선에서 시작되는 체제면서 주체화(subjectivation)의 점에서 시작되는 체제 기존의 지배적인 의미를 배신하는 정염(passion)의 정열(passion), 그리고 그에 따른 수난(passion)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정염적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글쓴이는 탈의미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모세를 이야기 한다. 즉: 이집트를 떠나 (탈) -> 수난(passion) -> 신(subject)의 부름에 의한 신민화(subjectification) 혹은 subjection (예속화) -> 유목적 배치 세움 -> 국가 성립 (territorisation) ###### 4.1 이중체 형성 이러한 흐름 안에서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얼굴과 부름을 던지는 얼굴은 마주보는 한 쌍의 돌린 얼굴이 (예속화로) 주체화 체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중체 (double) 이중화의 구성 이중체의 두가지 방식은 1. 독신자적인 의식 안에서 진행 ([[데카르트]] 코기토) 2. 정염적 커플의 이중체 (트리스탄 이졸데) 1. 독신자적 이중체 신에게서 독립하여 만들어진 '주체철학' 으로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대표적인데 이러한 이중화 과정은 =="정신적 현실을 지배적 현실과 포개는"== 기능을 한다. 2. 커플의 이중체 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혹은 정신분석가와 환자의 경우가 있다. ![[Screenshot 2022-01-26 at 17.29.56.png]] ([[@deleuze_thousand_1987]], 137) 1. 주체화의 점 (모세가 탈주선을 탄다. 트리스탄이 마크 왕에게서 벗어난다) 2. 서로 돌리는 얼굴 (마크왕과 트리스탄) 3. 4. 언표행위의 주체와 언표 주체 (부르고 부르는 것에 응답) 4. 5. 유한한 선형적 과정의 계속 (새로운 사제와 새로운 관료) 6. 과정 전체를 이끄는 탈주선 (호명에 무응답) ###### 4.2 두 가지 잉여성 기표적 체제에서의 잉여성은 > 기표적 체제에서 잉여성은 기호나 기호의 요소들 [...] 에 영향을 미치는 (involving/affectant) 객관적인 주파수(frequency) 현상이다. 각각의 기호와 관련된 기표의 최대주파수가 있으며, 동시에 다른 기호와 관련된 기호의 비교주파수가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체제가 일종의 '벽'을 발전시킨다는 것이고, 이 벽 위에는, 기표와의 관계에서만큼이나 기호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기호들이 새겨진다는 것이다. **=** > There is a redundancy of consciousness and love that is not the same as the signifying redundancy of the other regime. In the signifying regime, redundancy is a phenomenon of objective frequency involving signs or elements of signs (the phonemes, letters, and groups of letters in a language): there is both a maximum frequency of the signifier in relation to each sign, and a comparative frequency of one sign in relation to another. In any case, it could be said that this regime develops a kind of "wall" on which signs are inscribed, in relation to one another and in relation to the signifier. ([[@deleuze_thousand_1987]], 132-3) 이러한 잉여성은 주관적 이중성에서는 동일화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커플의 이중성에서는 기표가 기록되는 흰 벽 대신에 의식과 정염을 끌어당기며 그것을 공명시키는 '검은 구멍'이 존재할 뿐이다. ###### 4.3 탈영토화 주체화 체제가 긍정적 탈주선을 그리고 탈영토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가져간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지층에서 잘투하는 탈지층화의 절대적 탈영토화를 뜻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 결국 자폐증-기계 혹은 커플의 죽음 과도 같은 검은 구멍으로 이어지기 때문.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탈영토화의 선을 탈지층화로, 모든 지층을 넘나드는 추상적 다이어그램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 “이 모든 지층의 집합을 우리는 일관성의 구도와 추상기계로부터 분리한다. 그 일관성의 구도와 추상기계에는 어떤 기호체제도 없으며, 거기서 탈주선은 자신의 잠재적 긍정성을 실행하고, 탈영토화는 절대적 능력(puissance)을 실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가장 유리한(favorable) 배치를 뒤엎는 것이다. 즉 지층들을 향해 돌려진 얼굴로부터 일관성의 구도 내지 기관 없는 신체를 향해 돌려진 다른 얼굴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 #### 기호계의 다섯가지 변환/번역 가능성 -> 변환적 성분 transformational component > All transformations taking a given semiotic into the presignifying regime may be called **analogical transformations**; those that take it into the signifying regime are **symbolic**; into the countersignifying regime, **polemical or strategic**; into the postsignifying regime, **consciousness-related or mimetic**; finally, transformations that blow apart semiotics systems or regimes of signs on the plane of consistency of a positive absolute deterritorialization are called **diagrammatic**. ([[@deleuze_thousand_1987]], 136) **하나의 지층에서 다른 지층으로의 다섯가지 변환** 1. 어떤 기호계를 전-기표적 체제로 옮겨놓는 *유비적 analogical 변환* 1. 어떤 무용극에서 문학적인 기표적인 기호들을 신체의 동작이라는 전기표적 기호들로 변환시킴 2. 혹은 주자가례에서 유교의 교리를 구성하는 기표적 기호계가 '예'라고 총칭되는 특정하게 코드화된 신체적 동작(전기표적)기호계로 변환 2. 기표적 체제로 옮겨놓는 *상징적 symbolic 변환* 1. 정신분석학 -> 행동,동작, 꿈 등을 성적인 상징이나 징표로 '해석' 2. 매너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형성되었던 행동이) '문명'의 예절로 의미화 되는 것 3. 중심 척도가 존재 3. 반-기호적 체제로 옮겨놓는 것을 *논쟁적 내지 전략적 polemical or strategic 변환* 1. 암호 4. 탈-기표적 체제로 옮겨놓는 것을 *의식적 내지 의태적 consciousness-related or mimetic 변환* 이라고 부를 것이다 1. 뒤샹의 변기 5. 마지막으로 기호계나 기호체제를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탈영토화가 이루어지는 일관성의 구도 위로 폭발시키는 것을 *다이어그램적 diagrammatic* 1. 다른 네가지와 다르게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탈영토화가 이루어지는 일관성의 구도 위로 나아가는 것. 2. 중국의 선사들이 동문서답 식의 기이한 문답을 통해 만든 화두 3. 도를 묻는 질문에 몽둥이질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방할 #### 기호계의 성분들 ![[Screenshot 2022-01-27 at 11.08.28.png]] ([[@deleuze_thousand_1987]], 146) 위에서 구분한 것처럼 여기에는 Generative and transformational components들이 있다. > Pragmatics, then, already displays two components. The first could be called generative since it shows how the various abstract regimes form concrete mixed semiotics, with what variants, how they combine, and which one is predominant. The second is the transformational component, which shows how these regimes of signs are translated into each other, especially when there is a creation of a new regime.([[@deleuze_thousand_1987]], 139) “이는 다양한 추상적 체제들이 어떻게 구체적이고 혼성적인 기호계를 이루는지, 또 그것은 어떤 변수와 더불어 그러하며 그것들은 어떻게 결합되는지, 거기서 지배적인 것은 또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발생적 성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요(MP, 173; I, 146~47)” 여기서 추가되는 성분이 > A regime of signs has more than just two components. It has, in fact, four of them, which form the object of Pragmatics. The first was the **generative** component, which shows how a form of expression located on the language stratum always appeals to several combined regimes, in other words, how every regime of signs or semiotic is concretely mixed. On the level of this component, one can abstract forms of content, most successfully if emphasis is placed on the mixture of regimes in the form of expression: one should not, however, conclude from this the predominance of a regime constituting a general semiology and unifying forms. The second, **transformational**, component, shows how one abstract regime can be translated, transformed into another, and especially how it can be created from other regimes. This second component is obviously more profound, because all mixed regimes presuppose these transformations from one regime to another, past, present, or potential (as a function of the creation of new regimes). Once again, one abstracts, or can abstract, content, since the analysis is limited to metamorphoses internal to the form of expression, even though the form of expression is not adequate to account for them. The third component is **diagrammatic**: it consists in taking regimes of signs or forms of expression and extracting from them particles-signs that are no longer formalized but instead constitute unformed traits capable of combining with one another. This is the height of abstraction, but also the moment at which abstraction becomes real; everything operates through abstract-real machines (which have names and dates). One can abstract forms of content, but one must simultaneously abstract forms of expression; for what is retained of each are only unformed traits. That is why an abstract machine that would operate purely on the level of language is an absurdity. It is clear that this diagrammatic component is in turn more profound than the transformational component: the creations-transformations of a regime of signs operate by the emergence of ever-new abstract machines. Finally, the last, properly **machinic**, component is meant to show how abstract machines are effectuated in concrete assemblages; it is these assemblages that give distinct form to traits of expression, but not without doing the same for traits of content—the two forms being in reciprocal presupposition, or having a necessary, unformed relation that once again prevents the form of expression from behaving as though it were self-sufficient (although it is independent or distinct in a strictly formal way).([[@deleuze_thousand_1987]], 145-6) **다이아그램적 성분** / 추상기계? abstract machine ^ae32f3 > it consists in taking regimes of signs or forms of expression and extracting from them particles-signs that are no longer formalized but instead constitute unformed traits capable of combining with one another. This is the height of abstraction, but also the moment at which abstraction becomes real; everything operates through abstract-real machines (which have names and dates). ([[@deleuze_thousand_1987]], 145-6) “더 이상 형식화되지 않는, 하나를 다른 하나에 결합할 수 있는 비형식적 특질을 갖는 기호-입자를 추출하기 위해 기호체제나 표현형식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는 추상의 절정으로서, 추상이 실재화하는 계기기도 하다. 거기서는 실제로 모든 것이 (이름과 날짜가 기록된) 현실적-추상적 기계를 거쳐간다.”(MP, 181; I, 153)” 예시: 푸코의 벤담 (J,Bentham) 교소도 파놉티콘은 수인들을 다루는 가장 경제적으고 효율적인 메커니즘의 다이아그램 -> 어떤 형태로 만들고 어떻게 기능하는 가를 표시하는 다이아그램으로서, 교도소의 도식이지만 교도소는 아니며 행형의 방법을 보여주지만 행형의 언표는 아니란 점에서 어떤 내용도 표현도 가지고 있지 않는다. 다이아그램화 시킨다는 것은 양상 (소리 혹은 흐름)을 추상하여 포착하는 것이다. **기계적 성분** ### Chapter 6 기관 없는 신체 The body without organ ![[The-Dogon-Egg.png]] #Comments 이 장의 기관 없는 신체는 어떻게 우리 스스로 창조적이고 자유롭게 될 것인가에 대해 그 환희적 욕망을 통한 plates들의 파괴를 기관 없는 신체, 즉 순수한 가능성으로 차오른 욕망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더불어 이것은 그러한 기관 없는 신체가 가지는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데, 이는 20세기 nihilism으로 치달은 세상관을 그리고 있는 듯 보인다.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에 반대하는 것이라 그것을 조직하는 유기체에 반대한 것이다. 이것은 유기체에 대한 투쟁이며 또한 19세기 이후 생물학 (Georges Cuvier 이후) 에서 '생명'이라는 개념이 기관들을 하나로 통합된 유기화, 하나의 로고스(Logos)적 고정을 투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은 모든 기관을 제거하는 것이나 모든 지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며 기관 없는 신체가 목표로 설정되었을 때 많은 경우 죽음으로 귀착될 선을 타기 쉽게 된다. 들뢰즈는 강밀도 즉 할 수 있는 능력을 power라고 지칭하며 하고자 하는 의지를 "will"로 표현한다. “즉 “기관 없는 신체는 욕망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욕망하며, 또 바로 그것으로써 욕망한다.”(MP, 203; I, 173)”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들뢰즈에게 있어서 욕망은 성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들뢰즈/가타리는 결여라는 부정적 법칙, 쾌락이라는 외생적 규칙, 환상이라는 초월적 이상이 가장 최근의 사제의 형상인 정신분석가가 욕망에 내리는 3중 저주라고 칭한다. 이러한 욕망의 긍정적 과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욕망을 쾌락과 끊고 대신 기쁨이라는 스피노자의 감응(affect)과 연결시킨다. > “지층 위에 자리잡고, 그것이 제공하는 기회들을 실험하며, 거기서 유리한 장소를 추구하고, 궁극적인 탈영토화의 운동을, 가능한 탈주선들을 찾으며 그것을 검토하라. 여기저기서 흐름의 통접들을 확보하고, 선분마다 강밀도의 연속체를 이루려고 시도하며, 언제나 새로운 대지의 조그마한 부분들을 가지라. 탈주선들을 자유롭게 하고, 통접된 흐름들이 지나가고 탈주하게 하며, 기관 없는 신체에 지속적인 강밀도들을 해방시키는 데 이르는 것은 지층들과의 신중한 관계를 통해서다. 접속하고, 통접하고, 지속하라. 이것이 여전히 의미화하고 주체화하는 프로그램에 대립하는 전체 ‘다이어그램’이다. 우리는 사회구성체[사회적 형성체] 안에 있다. 우선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위해, 우리 내부에, 우리가 있는 곳에서 지층화되어 있는가를 보라. 지층들로부터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더욱 깊숙한 배치들로 거슬러 올라가라. 배치를 슬그머니 뒤집어서 일관성의 구도 쪽으로 넘어가게끔 하라. 기관 없는 신체가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오직 거기서뿐이다. 그것은 욕망들의 접속, 흐름들의 통접, 강밀도들의 연속체다.(MP, 199; I, 169)” > This is how it should be done: Lodge yourself on a stratum, experiment with the opportunities it offers, find an advantageous place on it, find potential movements of deterritorialization, possible lines of flight, experience them, produce flow conjunctions here and there, try out continuums of intensities segment by segment, have a small plot of new land at all times. It is through a meticulous relation with the strata that one succeeds in freeing lines of flight, causing conjugated flows to pass and escape and bringing forth continuous intensities for a BwO. Connect, conjugate, continue: a whole "diagram," as opposed to still signifying and subjective programs. We are in a social formation; first see how it is stratified for us and in us and at the place where we are; then descend from the strata to the deeper assemblage within which we are held; gently tip the assemblage, making it pass over to the side of the plane of consistency. It is only there that the BwO reveals itself for what it is: connection of desires, con- junction of flows, continuum of intensities. ### Chapter 7 안면성 얼굴에 대한 역사유물론적 연구, 얼굴의 역사유물론 얼굴에 대해 연구주제로 삼은 다른 인물들로는 [[Emmanuel Levinas]]와 시선에 대한 연구했던 [[Jean-Paul Sartre]], [[Maurice Merleau-Ponty]] 그리고 [[Jacques Lacan]] - *사르트르*의 시선은 지각의 통로로서의 '눈'과 구별된다 -> 타자의 '쌍생아적 출현' - *레비나스*는 사르트르가 타자의 시선을 두었던 자리에 타인의 얼굴은 둔다 ‘타인의 고통스러운 얼굴이야말로 ‘자아’나 ‘주체’로 환원 불가능한 초월성의 영역을 증거한다. - 예시: 동물원의 호랑이의 눈에서 슬픔을 보는 나의 ‘시선’ - *라캉*의 시선은 보려는 충동이라는 부분충동(partial instinct)의 대상이다 = 대상 a (objet petit a) - 라캉의 개념은 [[phenomenology|현상학]]에 가까이 있다. 라캉의 사위 였으며 합법 상속자였던 Jacques-Alain Miller가 설명한 라캉 역시 사르트르처럼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있었던 코제브[[Alexandre Kojève]]의 헤겔 강의를 통해서 [[phenomenology|현상학]]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도 하이데거에게 크게 기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Feldstein, R. et al. (eds.) (1996) _Reading Seminars I and Ii: Lacan’s Return to Freud: Seminar I, Freud’s Papers on Technique, Seminar Ii, the Ego in Freud’s Theory and in the Technique of Psychoanalysis_. SUNY series in psychoanalysis and cultur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p. 3-25] **들뢰즈/가타리의 얼굴을 다루는 방식은 위의 셋과 다르다.** 눈이 사라지고 시선이 등장하는 곳에 머리 대신 얼굴이 떠오른다. “얼굴은 그것의 생산을 필요로 하는 권력 배치의 산물이란 점에서 그 자체로 권력과 결부된 것이고, 따라서 얼굴의 문제가 권력의 문제인 한, 얼굴 자체가 바로 정치다.” 얼굴이 가지는 관계도 1. 얼굴과 언어 1. 기호들의 사용하는 활동은 언제나 안면성이란 특징을 수반한다. 또한 얼굴은 잉여성 전체를 응결시킨다. 얼굴은 기표적 기호를 방사하고 수신하며 풀어주고 다시 포획한다. 기표는 얼굴 위에 재영토화된다. 2. 머리와 얼굴 1. 표현적인 능력을 갖는 표면, 표정을 만드는 신체로부터 탈코드화된 표면 3. 얼굴과 풍경 1. 신체 상의 기관들을 표현적인 목적에 걸맞는 어떤 ‘풍경’으로 만든다. **탈영토화에 관한 4개의 정리** 1. 어떤 것도 결코 단독으로 탈영토화되지는 못하며, 적어도 두 항(項)이 항상 존재한다. ->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짝 2. 탈영토화하는 운동에서 혹은 위의 두 가지 요소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이 반드시 가장 강도가 높거나 가장 탈영토화된 것은 아니다. 3. 가장 탈영토화되지 않은 것이 가장 탈영토화된 것 위에서 재영토화된다. -> 다른신체부위가 얼굴처럼 표정을 갖게 되고, 그 표정을 통해 얼굴에 재영토화되는 것 4. (안면성)의 추상기계는 그것이 생산하는 얼굴에서뿐만 아니라, 이성의 질서에 따라 그것이 안면화되는 신체부위, 옷, 물건 들에 대해 다양하게 작용한다.ㅡ ![[Screenshot 2022-01-29 at 10.17.16.png]] 전체적인 기호체제나 기표적/의미적인 체계는 정면에서 ‘나’를 보고 말하는 얼굴. 가장 기본적 얼굴은 흰 벽에 두개의 검은 구멍으로 이러한 기본적 원소적 얼굴은 복합되어 두 개의 쌍을 이룬다. 사장과 노동자, 선생과 학생, 아버지와 아들등의 짝. 그래서 이 경우 원소적 얼굴은 4개의 눈을 갖는다. ![[Screenshot 2022-01-29 at 10.21.27.png]]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델을 딴 해양의 주체적이고 권위적인 얼굴 세번째의 극한의 얼굴에 두 개의 [[close-up|클로즈업]]이 대응한다고 말한다. > 얼굴은 본래 하나의 [[close-up|클로즈업]]니다. 1. *[[affection-image|감정-이미지]]* [[D. W. Griffith|그리피스]]의 [[close-up|클로즈업]] 2. *주체화 체제* 에이젠슈테인의 [[close-up|클로즈업]] -> 주체화하는 정염이 전염되는 양상을 탁월하게 표현 이러한 안면성의 추상기계가 하나의 얼굴이 되는 것, 즉 백인의 얼굴도 아닌 ‘백인’ 자체라고 할 때, 이러한 가공할 힘에서 어떻게 벗어나야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얼굴의 해체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 원시성으로의 회귀는 단지 낭만적이고 회고적인 향수를 전파할 뿐이다. 이 문제는 하나의 얼굴을 보편화하고 그것을 향한 동일화 운동을 야기하는 얼굴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 We will never succeed in making ourselves a new primitive head and body, human, spiritual, and faceless. ([[@deleuze_thousand_1987]], 188) > The white wall of the signifier, the black hole of subjectivity, and the facial machine are impasses, the measure of our submissions and subjections; but we are born into them, and it is there we must stand battle. ([[@deleuze_thousand_1987]], 189) 추상기계는 두 가지 형태 state 가 있다. 1. sometimes it is taken up in strata where it brings about deterritorial-izations that are merely relative, or deterritorializations that are absolute but remain negative 2. sometimes it is developed on a plane of consistency giving it a "diagrammatic" function, a positive value of deterritorial-ization, the ability to form new abstract machines 혹은 > “때로 추상기계는 안면성 기계로서, 흐름들을 의미화와 주체화에다 끌어 맞추고, 수목의 매듭과 소진(abolition)의 구멍에 끌어 맞추지만, 때로 그것은 반대로 진정한 ‘탈안면화’를 작동시키면서 일종의 탐사적 머리를 해방시키는 바, 이 **탐사적 머리**는 풍경 위에서 지층을 해체하고, 의미화의 벽을 돌파하며, 주체성의 구멍에서 솟구쳐 오르며, 진정한 리좀을 위해 수목을 잘라버리며, 긍정적 탈영토화나 창조적 탈주의 선 위로 흐름을 인도한다.”(MP, 232~33; I, 199) Sometimes the abstract machine, as the faciality machine, forces flows into signifiances and subjectifications, into knots of aborescence and holes of abolition; sometimes, to the extent that it performs a veritable "defacialization," it frees something like **probe-heads (fetes chercheuses, guidance devices)** that dismantle the strata in their wake, break through the walls of signifiance, pour out of the holes of subjectivity, fell trees in favor of veritable rhizomes, and steer the flows down lines of positive deterritorializaton or creative flight.([[@deleuze_thousand_1987]], 190) ###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