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an-Luc Nancy (2010). *Art Today*. : .
> [!INFO]
> Type:: [[&]]
> Title:: Art Today
> Author(s): [[Authors/Jean-Luc Nancy]]
> Year:: 2010
> Tags::
> DOI:: 10.1177/1470412909354265
> Citekey:: nancy_art_2010
> ZoteroURI:: [Open in Zotero: Art Today](zotero://select/items/@nancy_art_2010)
> ReviewedDate:: [[2023-02-21]]
## Citation
```latex
[@nancy_art_2010]
```
## Related
```dataview
TABLE file.aliases AS "Title" FROM [[@nancy_art_2010]] and -"Plans" and -"resources"
```
## Summary
- ### 당대의 의미
- 당대(contempory) 대신 오늘날 (today)를 쓴 이유에는 당대미술에는 고정된 의미를 가지기 쉽다
- 20-3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 그에게 당대미술 안에는 [[References/Concepts/impressionism|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 [[Surrealism|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아르테 포베라(이탈리아), [[Surrealism|초현실주의]]
- 당대 미술은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수행되는 일정 숫자의 예술적 관행에서나 나타나는 현상
- 그러니까 ‘당대’란 어떻게 보면, ‘조형예술’ 처럼 구체적인 미적 또는 학문적 특질을 표방하는 범주를 (적어도) 위배하(려고 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 예술은 언제나 동시대성을 가진 당대의 공간이자 현실공간에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즉 동시대인에게 그들 **세계의 형태** 를 보여주는 것이 미술이다.
- 여기서 세계란 **의미의 순환을 갖는 어떠한 가능성**
- (92) ‘World’ means a certain possibility of meaning, of circulation of meaning.
- 하이데거는 세계를 정해진 의미가 아니라 내재된 의미의 가능성이 모인 총합으로서 **유의의성(significability/Bedeutsamkeit)** 의 총체라고 설명했다.
- (92) ‘World’ means a certain possibility of meaning, of circulation of meaning. I am referring here implicitly to a definition by Heidegger, who says that the world is a totality of ‘significabilities’, that is of possibilities of meaning, not a totality of given significations, **but a totality of possibilities of signification.**
- 아트는 의미와 의의의 일종의 순환 가능성에 형식을 제시하고 부여한다.
- 하지만 당대미술은 예술에 대한 질문을 종결하길 허락하거나 의무화한다.
- contemporary art allows us to put to rest the question of art, or obliges us to put to rest the question of art.
![[Pasted image 20250227124213.png]]
- 기독교미술에 경우 어떠한 것에 형상을 제공한다.
- 세계의 가능성을 창안하는 것
- 즉 개개인의 아티스트는 스스로 세계를 열어내며 각각 고유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 프루스트가 말하듯 작가는 작품에 착수할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로지 작품의 영향 하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독자/관객’이라는 존재를 형성합니다.
- 당대미술이 낳은 의미의 공간은 모순과 언쟁, 때때로 폭력의 공간이 된다.
- 당대미술의 중심에는 예술에 대한 질문이 있다. (뒤썅부터 시작)
- ‘예술이란 무엇인가?’ What is art?
- 뒤샹은 예술을 종종 만남 rendezvous라고 정의한다.
- 이 만남은 만남이되 만남이 아닌,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과 그가 어느 시점에 선택하여 형식으로서 읽어낼 무언가의 조우입니다. [[202101131239—랑데부 예술과 세상과의 만남 환경과의 혹은 관객과의]]
- 시각적인 형식뿐만이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형식, 언어적 형식을 아우르는 아주, 아주 전반적인 의미에서 사용됨
- 이는 우리를 세계의 손실, 의미의 손실, 일대 도식과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따라서 [[aesthetics|미학]]적이기도 하든간에) 정립된 사고의 부재 상태에 놓였다고 할 수 있을 세계, 그렇기에 ‘당대미술은 자기 이야기, 불명확한 상태에 놓인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는 세계에 있게 합니다.
- 도식의 상실 ([[Immanuel Kant|칸트]]는 감성적/지각적 이미지의 가능성을 앞서는 선험적 이미지를 ‘도식’이라고 불렀다.) [[Immanuel Kant|Kant]] calls ‘schema’, as he says, a non-sensible image that precedes the possibility of sensible images
- 예를들어 기독교미술에선 기독교 자체가 도식이었다. 도식의 사라짐
- 종종 동시대 작가들은 예술가 대신에 목격자를 스스로 캐릭터화하고, 이러한 증인이길 자처하는 사람에게 양식을 (스키마) 선보이거나 의미를 창조할 가능성은 없다.
- 그들이 목격하는 것은 기성의, 아주 명료한, 의문점이라곤 없는 (ready-made, very clear, without mystery)
예시:
![[무제.001.jpeg]]
실비 블로셔(Sylvie Blocher), 〈여름93 *ÉTÉ93*〉, 1993, 설치, 빌뢰르반현대미술관 소장
- 이러한 작품들은 메시지가 형식을 앞서며 형식을 지배한다.
- 의미의 제스처화 exclusively gestures of signification (보통 정치적 의도)
- 예술을 정치적인, 증언으로서의 예술로 본다면 예술을 일종의 의미제작같은 것으로 탈바꿈 시키게된다.
>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미술, 너무 빤하거나 세상을 열어젖히지 못하는 의미를 과중적재하는 대신, 그저 닫힌 세상, 인접한 세상, 열린 데 없는 세상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예술적 행위란 무엇일까요?
> What remains of art despite everything, in an artistic act that we can assess or overload with significations that doesn’t open up a world, but rather simply gives an account of a closed world, a closed-in world, a world without any opening?
### 질문
- 당대미술이 예술에 대한 질문을 종결하길 허락하거나 의무화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아트가 의미를 overloaded 하는 대신 닫힌 세상, 전혀 '열림'이 없는 세상에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 아트란 무엇이 있을까요?
- What remains of art despite everything, in an artistic act that we can assess or overload with significations that doesn’t open up a world, but rather simply gives an account of a closed world, a closed-in world, a world without any opening?
1. 제스처
1. 예를들어 정치적인 의미가 가득찬 실비 블로셔의 작업에서도 옷위에 여성의 머리카락을 붙여놓는 제스처가 있다.
2. 제스처의 말미에 따라붙는 신호, 의미화하지 않는 신호
- (97) at the end of the gesture, the sign, but it’s a sign that does not signify.
- 제스처란
- 동작 자체와 의도가 이질적인것
- 제스처는 의미에 선행하거나, 동행하거나, 뒤따르는 지각적인(sensible) 역학, 또한 감성적인 감각(sens sensible(sensitive)
- 이 제스처라고 불리는 요소에 대한 질문이 예술에는 존재한다라는 의견은 [[Immanuel Kant|칸트]], 헤겔, 니체, 키에르케고르, 아도르노, 사이데거, 데리다 등을 포함한 모든 예술철학과 예술에 대한 숙고 사이에 동의가 있다.
- 결말이 없는 제스처,
- 제스처는 멈추지만 그것의 (결말 없는) 최후엔 신호(sign) 무엇가를 지시하는 신호(signal)에 가까운 독일어 단어 wink와 상통하는 신호가 있다.
- 낭시는 자신의 저술 [[202101131423—장 룩 낭시 On a Divine Wink]]에서 하이데거를 언급하며, wink의 번역불가능성과 더불어 하이데거의 현상학에서 zeichen(신호/징표)로서, 대응하는 의미로 고착/귀결되기 이전 중간지점으로서의 wink, 유예성 그 자체로서의 wink를 설명한 바 있다.(역자 주)
- 하이데거는 이 독일어 윙크를 그 임무는 물론 존재 자체가 이 wink에 있는 궁극의 절대자를 설명하며 사용했다.
- 예술적 체스처를 만드는 winks는 무엇을 알리는 것일까?
1. 예술 작품 그 너머를 향한 신호이지, 그 자체만으로 예술 작품일 수는 없다는 것.
2. 그와 상반되게 작품으로서 그 존재와 성격은 언제나 작품 바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1. 작품 자체를 넘어서는 신호 그것이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2. 예를들어 듀샹이 변기를 ‘이것은 미술작품이다’ 라고 말한다는 행위는 목적의식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로 신호가 된다. (이것이 당대의 신호란 바로 이걸 향한 신호이다.)
예시:
- ![[Pasted image 20250227124233.png]]
- ![[242087_2_800.jpeg]]
- ![[242087_3_800.jpeg]]
- ![[242087_4_800.jpeg]]
- ![[242087_5_800.jpeg]]
- 두꺼운 유리판으로 만들어진 유리 미궁
- 아티스트가 유리벽을 망치로 무수어 버림으로해서 작업은 폐쇄된 공간으로 탈바꿈함
- 미로를 통과할 수 없게 만들어내느 데서 오는 동요
- 낭시는 이 작품이 제스처의 존재를 실증한다고 생각한다.
- 이 경우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파멸의 제스처이자 투명성과 소통된 의미의 와해
> 유리에 빛이 어른거리게 함으로써 행위자는 정확히 유리를 통해 세계, 물질세계, 빛의 세계, 태양의 세계, 혹은 촛불의 세계, 기타 모든 광원의 세계에 형태를 부여하는 과정에 놓이게 됩니다. 그 과정은 그저 새로운 섬광 혹은 빛이 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한 ‘빛이 나게 하는 것’을 라틴어로 풀이했을 때, 이는 물질 위에 어리는 빛(lumen)으로부터 광채 그 자체로서의 빛, 표면에 감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밝게 비추는 빛(lux), ‘빛이 있으라’의 바로 그 빛, 그리하여 세계의 창조로 돌아가는 바로 그 빛으로 향한다는 뜻이 되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르미지아니가 우리와 천지창조를 곧장 연결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단순히 모든 예술적 제스처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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