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dowick, D. N. (2005)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 Seoul: Greenbee. > [!INFO] > Type:: [[&]] > Title::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 > Author(s): [[David Norman Rodowick]] > Year:: 2005 > Tags:: > DOI:: > Citekey:: rodowick__2005 > ZoteroURI:: [Open in Zotero: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zotero://select/items/@rodowick__2005) > ReviewedDate:: [[2023-02-11]] ## Citation ```latex [@rodowick__2005] ``` ## Related ```dataview TABLE file.aliases AS "Title" FROM [[@rodowick__2005]] and -"Plans" and -"resources" ``` ## Summary 들뢰즈의 경우, 영화의 이미지 구성성분이 움직이는 “기호적 질료(signaletic material)”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변조 가능한 특징들, 즉 감각적인 것(시각과 청각), 운동적인 것, 강도를 띠는 것, 정서적인 것, 리듬적인 것, 음조적인 것, 심지어 언어적인 것(구어와 문어)등을 포함한다. 에이젠슈테인은 처음에 이를 에디올로기소(ideologram)에, 다음에는 심오하게도 전-언어 또는 원시 언어체계에 해당하는 내적 독백(internal monologue)에 비유한다. 이는 언어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랑그나 랑가주가 아니라 가소성의 덩어리, 탈-기표적이며 탈-통사적인 질료, 곧 언어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질료다. * For Deleuze, the image components of cinema comprise instead a moving “*signaletic material* which includes all kinds of modulation features, sensory (visual and sound), kinetic, intensive, affective, rhythmic, tonal, and even verbal (oral and written). Eisenstein compared them first to ideograms, then, more profoundly, to the internal monologue as proto-language or primitive language system. But even with its verbal elements, this is neither a language system nor a language. It is a plastic mass, an a-signifying and a-syntaxic material, a material not formed linguistically” ( *Time-Image*29.). ### 38 * 들뢰즈는 이미지 실천 image practice 가 사회적, 테크놀로지적 자동기계라고 주장한다. 이 자동기계에서 각 시대가 특정한 사유의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스스로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정신기호noosigne 로 주어지는 좌표들을 이용해 그 이미지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이 지도 제작은 정신적이다. 그리고 이 지도는 내적 분절, 접속, 연합 및 기능작용으로 구성된 뇌의 이미지를 함축한다. 따라서 사유의 이미지는 넓은 의미에서 역사상의 특정한 영화적 실천을 정신적 자동기계 또는 사유기계로 나타낸다. * Deleuze depicts image practices as social and technological automata where each era thinks itself by producing its particular image of thought. In turn philosophy can map this image in mental cartographies whose coordinates are given as “noosigns.” This is an implied image of the brain with its internal wirings, connections, associations, and functionings. In its largest sense, then, the image describes historically specific cinematic practices as “spiritual automata” or “thought machines.” (6) #### 40 * 들뢰즈는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가 시간을 공간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본다. 전자는 시간에 대한 간접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후자는 직접적 시간이미지를 제공한다. 들뢰즈는 간격, 즉 포토그램,쇼트,시퀀스 사이의 공간이나 경계를 재고찰하는 한편, 영화가 시간을 공간적으로 표상하기 위해 이 간격을 어떻게 조직하는지를 살핀다. * 베르그송의 관점에서 사유는 항상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사유는 수평측을 따라 전개되는 동시에 수직축을 가로질러 연장된다. 전자는 연합(association)의 축이다. 그것은 유사성과 인접성, 대조와 대립의 원리를 바탕으로 이미지들을 연결한다. 동시에 통합—분화(intergration-differenciation)의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연합된 이미지는 서로 구분되고 개념적으로 다시 묶이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집합들이 된다. * In Bergson’s view, thought always moves in two directions at once: while it unfolds along a horizontal axis, it also expands across a vertical axis. The former is an axis of association; it links related images through principles of similarity and contiguity, contrast and opposition. At the same time, associated images are distinguished, then grouped conceptually, into ever-growing ensembles or sets through a process of differentiation and integration. (David Norman Rodowick, *Gilles Deleuze’s Time Machine*, Post-Contemporary Interventions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997), 10) * 프레임화는 영화화 이전의 공 간에서 대상들을 분리한 다움 유도된 집합 내에서 그 대상들을 행동, 몸짓, 몸체 무대장치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프레임은 영화의 움 직이는전체룰향해 쇼트를개방한다. 쇼트는포토그램의 단계에서부터 행동-운동의 상호 연결을 집적하기 시작한다. * 프레임회 영화화 이전의 공 간에서 대상들을 분리한 다움 유도된 집합 내에서 그 대상들을 행동, 몸짓, 몸체 무대장치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프레임은 영화의 움 직이는전체룰향해 쇼트를개방한다. 쇼트는포토그램의 단계에서부터 행 동-운동의 상호 연결을 집적하기 시작한다. (45) ### 들뢰즈와 베르그송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이 미지』와 『시간-이미지』가 『푸코』. 『의미의 논리』. 『철학이란 무엇인가』 같 은 주요 저작들 간의 주요 테마와 접점을 드러냄으로써 , 1980년대 들뢰즈 저작의 연결고리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Rodowick, 2005, p. 10) > “실제로 예술가들 또한 사유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아 스스로 작업하는 질료에 내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구축을 통해 사유한다.” (Rodowick, 2005, p. 11) > “운동-이미지는 역사에 대한 헤겔적이고 변증법적인 개념에 따라 전개되는 반면, 시간-이미지는 니체적이며 계보학적이다.” (Rodowick, 2005, p. 12) “영화의 이미지 구성성분이 움직이는 “기호 적 질료(matiere signaletique)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변조 가능한특징들 즉감각적인 것(시각과청각). 운동적인 것, 강도를띠는것, 정서적인 것, 리듬적인 것, 음조적인 것, 심지어 언어적인 것(구어와 문어) 등을 포함한다” (Rodowick, 2005, p. 37) 그리고 이러한 기호적 질료는 이미지의 이념으로 구분되어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로 실천된다. - [!] 이러한 분류는 또한 베이컨에서 손에 의한 것과 눈에 의한 예술 방식과 닮아있다. “들뢰즈는 이미지 실천(image practices)이 사회적 · 테크놀로지적 자동 기계라고 주장한다. 이 자동기계에서 각 시대가 특정한 사유의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스스로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철학은 정신기호로 주어 지는 좌표들을 이용해 그 이미지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Rodowick, 2005, p. 38) 들뢰즈가 보기에 미국 무성영화, 소비에트 몽타주 학파, 프랑스 [[References/Concepts/impressionism|인상주의]] 연화 모두 하나의 전략, 질적으로 상이한 시간이라는 단위에 따라 운동의 유리수적 절편들을 수량적으로 관리하면서 몽타주 이념을 창시한다는 점에 있어서 모두 같다고 여겨진다. #### 들뢰즈가 읽은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의 세가지 테제들 |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의 세가지 테제들 | | | | | :---------------------------------------------------- | :-------------------------------------------------------------------------------------------------------- | :----------------------------------------------------------- | :-------------------------- | | 어떤 순간들의 연속이든 그곳에서 파생되는 운동은 환영이다 (베르그송) | 운동에 대한 고대의 오류 (영원한 포즈들) 와 근대의 오류 (움직이지 않는 단면들) 는 대동소이 하다 | 둘 다 모두 전체를 구축하고 모든 것이 주어졌다고 가정 → 실재적인 운동의 여지가 사라짐 (MI, 7/17) | | | | 자연적 지각의 조건을 초월한 운동-이미지의 발견을 "물질과 기억"의 철학적 혁신으로 읽음 (들뢰즈) | | | | 순간들의 특질에 비추어 왜 이 운동이 환영인가 탐구 (베르그송) | 영화가 서구 사유의 주요한 과도기적 순간을 점유하는 철학적 이미지를 창안 (들뢰즈) | | | | | ‘운동을 임의의 계기들과 관련시킬 때는, 어떤 계기에서도 현저하고 특이 한 것 새로운 것의 생산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MI, 7/17)” (Rodowick, 2005, p. 67) | 새로운 실재를 완성하기 위한 기관(organ)의 출현 | | | 환영과 실재를 운동과 관련지어 대조 (베르그송) → 운동이 지속 또는 전체 내에서의 변화를 표현 | 참된 운동과 거짓 운동을 구별하는 척도(x) | | | | | 지속내의 질적 변화를 전체와 부분들 (집합들)의 관계 (o) | | | | | 주된 논점은 그러므로 전체의 본성 | 닫힘은 인공적으로만 가능 | | | | | 전체는 정의상 본질의 변화(운동에서 공간으로의 변화) 없이는 분할될 수 없다. | | | | | “따라서 집합은 항상 공간의 정적인 단면으로 파악될 수 있다” (Rodowick, 2005, p. 70) | 전체는 끊임없는 변형으로 직관할 수 있을 뿐이다. | 1. 어떤 순간들의 연속이든 그곳에서 파생되는 운동은 환영이다 (베르그송) 1. 운동에 대한 고대의 오류 (영원한 포즈들) 와 근대의 오류 (움직이지 않는 단면들) 는 대동소이 하다 1. 둘 다 모두 전체를 구축하고 모든 것이 주어졌다고 가정 → 실재적인 운동의 여지가 사라짐 (MI, 7/17) 2. 자연적 지각의 조건을 초월한 운동-이미지의 발견을 "물질과 기억"의 철학적 혁신으로 읽음 (들뢰즈) 2. 순간들의 특질에 비추어 왜 이 운동이 환영인가 탐구 (베르그송) 1. 영화가 서구 사유의 주요한 과도기적 순간을 점유하는 철학적 이미지를 창안 (들뢰즈)“ 2. ‘운동을 임의의 계기들과 관련시킬 때는, 어떤 계기에서도 현저하고 특이 한 것 새로운 것의 생산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MI, 7/17)” (Rodowick, 2005, p. 67) 1. 새로운 실재를 완성하기 위한 기관(organ)의 출현 3. 환영과 실재를 운동과 관련지어 대조 (베르그송) → 운동이 지속 또는 전체 내에서의 변화를 표현 1. 참된 운동과 거짓 운동을 구별하는 척도(x) 2. 지속내의 질적 변화를 전체와 부분들 (집합들)의 관계 (o) 3. 주된 논점은 그러므로 전체의 본성 1. 닫힘은 인공적으로만 가능 2. 전체는 정의상 본질의 변화(운동에서 공간으로의 변화) 없이는 분할될 수 없다. 3. 전체는 열림(l’Ouvert)이며 내용이나 공간보다는 시간 심지어 정신과 연관된다. 4. “따라서 집합은 항상 공간의 정적인 단면으로 파악될 수 있다” (Rodowick, 2005, p. 70) 1. 전체는 끊임없는 변형으로 직관할 수 있을 뿐이다. #### 들뢰즈가 보는 영화와의 관계 “[영화]에 관련된 테크놀로지를 소개한 과학은 근본적으로 근대 후기의 과학이다. 논리적으로볼때. 영화는 순간성(노출시간의 감소), 순차성(반복가능한 공간적 상수, 영화의 예를들면 35mm), 선형성(영사슬라이드상의 인접하는 등거리의 이미지), 연속성(일정 한비율로 운동을 자동화)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영화는 ‘‘운동을 임의의 순간들의 함수로, 즉 연속성의 인상을 창조하기 위해 선택된 등거리 순간들의 함수로 재생산하는 체계 ”(MI, 5/14)로 정의된다.” […] “목적론과 총체성을 강조하는 근대 철학은 전체들을 구축함으로써 운동을 놓치는 과학의 전철을 밟는다.” (Rodowick, 2005, p. 66-7) 쇼츠 = 닫힌 닫위라는 측면에서 집합 = 공간적 = 개별적인 부분들로 구성 > “프레임의 경계는 본래 유동적이다 경계는 대상을 공간적으로 에워싸는 동시에, 쇼트를 모든 방향으로 개방한다. 그럼으로써 쇼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련의 시간적 관계들로 해체된댜 이것이 에이젠슈테인이 ‘영화의 4차원이라 일컬었던 바다.” (Rodowick, 2005, p. 70) 운동과 변화의 관계 (상이하지만 운동에 함축되어 있음) 1. 집합들, 즉 변별적 대상이나 부분들이 무리지어 있는 공간적 단면, 움직이지 않는 단면이 있다. 2. 이행의 운동, 즉 대상과 집합들의 상대적 위치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대상과 집합들을 질적으로 변화하는 전체로 통합함으로써 그것들을 변주하는 움직임이 있다. 1. 이에 상응하는 이미지 = 몽타주를 통한 닫힌 집합들을 교차하고 상관시키는 다수의 움직이는 단면 3. 고유한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신적 실재에 해당하는 지속 또는 전체가 있다.(MI, 11/22) = 시간-이미지 여기서 베르그송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은 마음과 물질, 18세기 이후 이미지가 물질의 재현, 즉 주체의 의식 바깥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내적이며 이차적인 표현 혹은 보충물로 간주되어 온 것에서 > “베르그송의 목표중하나는 의식 ·물질·시간의 연속성 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Rodowick, 2005, p. 73) 그에게 있어서 물질과 이미지는 차이가 없다. > “물질이 빛과 동일하다는 것은 첫째로 물질이 이미 근본적인 나타남(apparaitre) 또는 이미지 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지들의 논쟁에서 벗어 나 좀더 상식적인 견해로 되돌아올 것을 권한다. “대상온 그 자체로 존재 한다. …… 우리가 대상을 지각할때 이는 그 자체로 그림과 같으며 그 자체로 이미지다. 그러나 그것온 스스로 존재 하는 이미지다. . . .... 물 질은 그것이 지각되는 대로 존재 한다. 물질이 이미지로 지각되기 때문에, 정신은 그것을, 그 자체를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다." (MM, 10)” (Rodowick, 2005, p. 74) 잠재적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 의식의 관점에서 몸과 몸의 필요가 물질 내에서 현행적으로 파악되는 것에 제약을 두는한 잠재적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베르그송은 두가지의 이미지 정도 (그에게 있어서 이미지 종류의 차이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이다)를 나눈다. 1. 현재의 이미지=[[plane of immanence]] 들뢰즈의 이 개념과 같다 > “나는 이미지들의 집합체를 물질이라 부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미지들, 다만 나의 몸이라는 하나의 특별한 이미지의 가능한 작용을 가리키는 이미지들을 물질에 대한 지각이라 부른다."(MM , 22)” (Rodowick, 2005, p. 76) 그러므로 베르그송과 들뢰즈 둘 다에게 있어서 내부와 외부의 문제는 철학에서 질문할 기본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두 가지 체계의 상호작용 과정에 대한 것, 지각적 그리고 인식론적 사건에서 두 체계가 서로 얽히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1. 운동-이미지를 평면으로 정의 = 전체 집합체 = 현재의 이미지 = universal variation = 내재성의 평면 = (이미지=운동)이 되는 세계의 드러남 2. 운동-이미지의 세가지 변형이 그에 상응하는 기호과 더불어 규정되는 과정 3. 시간의 직접적 이미지를 구성해서 기억과 의식의 문제로 우리를 인도 ### 영화와 이미지 들뢰즈에게 있어서 영화는 베르그송적 직관을 자동적으로 생산하는 가장 근접한 20세기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이미지에는 한편으로 물질의 보편적 변이가, 다른 한편으로 시간 내에서 사유의 운동이 내재한다 → 운동-이미지 (시간의 간접적 현시), 시간-이미지 (시간의 직접적 현시) #### 운동-이미지, 프레임 > 퍼스의 실용주의는 영화의 운동-이미지의 기호를 정의하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운동 내의 사유 이미지, 운동에 해당하는 사유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위해 들뢰즈는 퍼스의 기호학을 수용한다. 1. 모든 사유가 기호들 내에 존재하는 한 기호는 언어와 동등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유에 가깝다 2. 둘째 논거는 우리가 사유나 기호에서 세계를 이해하며, 이때 사유 및 기호는 세계 와 일원론적으로, 즉 실체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Rodowick, 2005, p. 92) 3. “셋째 논거는 사유가 비물질적 ·반영적인 것이 아니라 행동적 인 것, 즉 역사적 인 만큼이나 실재적인 행위,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행동적인 활동이 라는 것이다.” (Rodowick, 2005, p. 92) 하지만 퍼스와 들뢰즈의 분명한 변주 혹은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 원인은 퍼스가 일차성으로 정의한 어떤 사물에도 의존적이지 않은 실존의 개념, 질에 대한 개념 그 상위에 영도성(zéroïté)가 있다는 것이다. 지각은 다른 유형의 이미지로 연장되어야만 "일차적"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다. > “따라서 지각 이미지는 운동-이미지의 작용으로 수행되는 연역 과정에서의 영도와 같을 것이다. 퍼스의 일차성 이전에 ‘영도성’ (zéroïté)이 있다.” (TI , 31-32/47)” (Rodowick, 2005, p. 121) 따라서 지각-이미지는 지각을 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이며 지각 가능하고 가시적인 이미지는 결국 *운동-이미지에 따라* 네가지 근본적 유형으로 분류된다. 1. 지각-이미지에서 파생되는 [[affection-image|감정-이미지]] = 일차성 = 질 1.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Joris Ivens]] [Regen/Rain (1929)](https://youtu.be/DWFapEKuVOo) 2. 행동-이미지 = 이차성 3. 관계-이미지 = 삼차성 퍼스와 다르게 들뢰즈는 이미지와 기호의 분류학이 잠재적으로 무제한이라고 믿는다. 베르그송의 운동의 세가지 테제 - 닫힌 체계의 결정 - 한 체계를 이루는 부분들 사이에서의 운동 - 운동 속에서 표현되는 변화하는 전체 를 통해서 들뢰즈는 이미지와 기호에 대한 연역을 표명한다. **프레임 → 둘러싸기(enclosure) = 인공적, 상대적, 임의적으로 닫힌 공간 = 집합 형성** 프레임의 변수들 (이 변수들을 통해 부분들 혹은 부분 집합으로 분리 가능) 1. 이미지의 정보량 (informatic) 여기서 “이미지는 단순히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조직 정도는 가독적 공간(legible space), 지각되는 만큼 독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을 재현한댜” (Rodowick, 2005, p. 104) 1. 희박한 (rarefaction) 정보량의 예시 [[Peter Kubelka]]의 Arnulf Rainer (1960) 1. ![[image-w1280.webp]] 2. 포화(saturation) → 집합들의 증식 → 이중인화나 프로세스 쇼트 = 평면의 다층화 1. 예시 [Vertigo의 Scottie’s 악몽](https://youtu.be/bxIRHJz8DmY) 2. 프레임은 기하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운동역학적인 것으로도 정의 가능 1. 기하학적인 프레임은 이미지의 윤곽선이 운동중에도 변하지 않는 형태를 조직 2. 운동역학적인 프레임, 프레임의 활성화 아이리스 인 아웃, 와이프 등 유동적인 프레임 윤곽선을 함축 3. “프레임화의 가장 복잡한 측면은 들뢰즈가 화면 밖 영역([[hors-champ]]) 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는 노엘 뷔르시가 정의하는 화면 밖 공간의 분절을 포함하지만. 그 관점은 독창적이며 특히 상대적 운동과 절대적 운동 간의 관계로 돌아간다는 것과 관련해서그렇다.” (Rodowick, 2005, p. 105) > “그러나 (프레임) 집합이 아무리 거대하게 팽창하더라도 그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전체 (Whole)를 형성하지 않는다.” (Rodowick, 2005, p. 106) (들뢰즈는 베르그송을 따라) “전체를 본원적으로 정의한다. 전체는 목적 론적 ·전체론적 운동으로 정의될 수도 없으며 , 근본적으로 공간적 인 형상으로 기술될 수 없다. 오히려 전체는 열림 (Ouvert), 즉 “아무리 큰 집합이라도 각각의 집합이 자족적으로 닫히지 못하게 하는 것, 각각의 집합이 더 큰 집합으로 스스로를 연장하도록 강제 하는 것 ” (MI, 16/29) 이다.” (Rodowick, 2005, p. 107) **전체는 공간적, 현행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적, 잠재적인 것이다.** 베르그송의 운동에 대한 세 가지 층위 = 영화적 운동-이미지의 기본 분절 - 닫힌 체계의 결정 → 프레임화는 인위적으로 닫힌 집합의 형성 - 한 체계를 이루는 부분들 사이에서의 운동 → 쇼트는 한 집한의 부분들 간에 구축되는 운동 - 운동 속에서 표현되는 변화하는 전체 → 지속의 표현 몽타주 = 시간의 간접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운동-이미지의 배치 들뢰즈에게 있어서 몽타주는 단순히 커트 스타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체계를 형성하는 구성의 논리, 즉 철학적 의미에서 규정적 이념을 표현한다. → 변화를 표현 → 시간에 형식을 부여 > "결과적으로 몽타주가 되는 모든 것은, 그자 체로든 다른 어떤 것으로든, 시간 또는 지속의 간접적 이미지다 . 베르그송이 비판하는 동질적 시간이나 공간화된 지속이 아니라, 운동-이미지의 분절에서 홀러나오는 사실상의 지속과 시간이다 . (…) 몽타주는 시간의 간접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운동-이미지의 배치다” (MI, 29 -30/47) 이렇게 몽타주는 이미지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기호를 부여한다. - [!] 헤겔이 역사성의 과정을 통해서 시간의 기호를 부여하는 과정이랑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운동의 작용으로 정의되는 방식 혹은 이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들은 두 가지 근본적 시간기호(chronosigne)의 변주이며 각각 운동과 관련해서 구성적 공간 배치를 표현한다.“ 따라서 몽티주의 전략은 변화가 운동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을 정의한다.” (Rodowick, 2005, p. 114) - 미국 영화의 유기적 몽타주 - 소비에트 영화의 변증법적 몽타주 - 프랑스 [[References/Concepts/impressionism|인상주의]]의 양적 또는 외연적 몽타주 - 독일 표현주의의 내포적 몽타주 이러한 이념들은 근본적 두가지 시간기호 즉, > “하나는 시간을 어떤 전체 즉 무한히 희미해지는 과거로부터 무한히 확장되는 미래로 연장 되어 나가는 화살로 제시한다. 다른 하나는 어떤 수치 적 단위, 어떤 식으로 든 파편화할 수 있는 간격들로 측정 되는 미적분학으로 제시한다.” (Rodowick, 2005, p. 113) 후자는 현재의 가변성, 전자는 과거와 미래의 광대함 > “철학적 전통을 따라, 들뢰즈는 자연적 관계와 추상적 관계를 구분한다. 자연적 관계는 이미지의 계열이 연쇄적으로 파생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 경우 이미지는 연상의 연쇄를 해방한다. 각각의 연상은 공통점이 있는몇몇 명백한 요소들을 통해 다른 연상이 뒤따르도록 자극하며 , 이때 작 은 유시성이 차이들의 계열을 산출한다. 다른 한편, 추상적 관계는 명시적 공통성 보다는 암시적 공통성에 의거해 두 개의 이미지들을 한데 모은다. 유사성보다는 상동성(homology)이 이에 해당한다. 자연적 관계가 계열을 이루는 지점에서 추상적 관계는 세 항들 간의 집합인 전체를 구성한다.” (Rodowick, 2005, p. 143) #### 시간-이미지, 니체 > “감각 一운동적 도식 이 붕괴하면 새로운 잠재력을 가진 집합이 이미지 내에서 열리게 된다. 일단 몽타주의 간격이 유리수적인 것에서 무리수적인 것으로 변한다.” (Rodowick, 2005, p. 148) > “이미지가 더 이상 행동이나 갈등의 완수에 소진되지 않을때, 그것은 이미지의 기능과 잠재적 의미작용이 모두 변화하는 텅 빈 공간이 된다.” (Rodowick, 2005, p. 148) 보기와 듣기는 행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해 해독의 행위를 위한 공간이 되며 가독적 이미지, 가독기호(lectosign)이 된다. 이렇게 시지각기호(opsigne) (시간-이미지의 영화에 대핸 선행조건) 와 음향기호(sonfine)을 만들어 낸 행동-이미지와 감각-운동적 도식에 강력한 도전은 네 개의 조류와 함께 발생한다. - 오즈 야스지로(2차대전 후 작품들) - 1940년대 말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 195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 1960년대 뉴 저먼 시네마 이 도전을 통해 운동-이미지에서 행동-이미지 (논리적 결과를 밀어붙이는) 의 위기가 찾아왔고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세가지 반전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운동은 시 간에 대 한 관 점이 되 면서 새로운 몽타주 형식 및 내러티브롤 개척한다.” (Rodowick, 2005, p. 157) 1. 이미지는 행동-이미지를 넘어서 순수 시지각적-음향적 이미지가 됨으로써 감각-운동적 도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2. 이미지는 "시간-이미지, 가독적 이미지(image lisable), 사유하는 이미지(image pensante)의 직접적이고도 역량 있는 계시를 향해 열려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지각기호와 음향기호가 시간기호, 기독기호, 정신기호로 소급된다. (TI, 23/35)" 3. 운동의 질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운동-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 운동-이미지가 궁극적으로 전체의 이미지, 즉 공간 내의 연장성과 항상-팽창하는 유기적 총체성에 기초 - 시간-이미지는 전체, 보편적 생성, 변화 또는 창조적 진화에 대한 직관에서 파생된다 → 유기적 행동-이미지에서 벗어나 세 가지 종류의 기호, 가독기호, 시간기호, 정신기호에 대해 논하게 된다 → 묘사, 서사, 사유 > “운동-이미지가 충격을 줌으로써 사유를 유도하는 반면(초기 에이젠슈테인), 시간-이미지는 사유의 역량에 대한 지식을 뒷받침함으로써 그 역량을 증대한다” (Rodowick, 2005, p. 163) 가독기호 → 묘사의 새로운 형식, 결정체적 이미지 구축 > " 이미지의 시각적 요소 및 음향은 내적인 관계로 접어든다. 이는 전체 이미지가 보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읽혀야" 함을 뜻한다. […] 이들을 책처럼 구성하는 것은 지각 가능한 세계의 ‘문자성’ (littéralité)이다. (TI, 22/34)” (Rodowick, 2005, p. 156) 이를 통해 > “결국 운동은 공간의 묘사를 사유의 기능에 종속시키는 힘으로 재규정 된다” (Rodowick, 2005, p. 161) 묘사+서사 → 사유 형식 ##### 물질과 지각의 차이 (정도) 지각과 기억의 관계는? > “지각은 운동에 호응할 수 있는 주체가 운동을 반영하고 중단하거나 또는 저지하는 장소에만 존재한다.” (Rodowick, 2005, p. 167) 지각 = 간격, 한편으로는 감각 다른 한편으로는 행동을 향해 달리는 지각 그리고 그 사이에 떨어지는 것이 감정(변용) = 비결정(분석된 자극이나 지각에 비추어볼 때 적합한 반응이나 행동으로 선택될 수 있는 반응이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특정 범위 내에 있음)의 중심 > “그리고 이를 넘어서 의식 자체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우리가 “사물에 대해 행동하는 생명체의 선택에 달린 비결정의 범위’’ (MM, 41)를 어떻게 사고하는가에 달려 있다.” (Rodowick, 2005, p. 167) 베르그송 → 순수지각 (생리적 한계로 운동을 여과해 사물의 이미지 추출) = 직접적인 지각 전부 > “그렇다면 기 억은, 지각과 대조적으로 시간 내에서 한층 복잡하고 무수한 지 점들을 여러 이미지–한편으로는 지각에서 ,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 자체 에서 끌고 들어온 이미지–와 연계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직접적 이미지는 그 과정에 대한 시청각적 지도 그리기다.” (Rodowick, 2005, p. 168) 주관적 파악 = 기억의 작인을 통한 실재의 수축 → 두가지 형식 1. 회상의 층들이 직접적 지각의 중핵을 둘러쌈 → 과거의 시트들 2. 역사적 순간들이 단일 지점으로 응축 → 현재의 첨점들 시간-이미지 = 기억의 이미지 (= 베르그송적 의미의 순수 기억-이미지) ![[Screenshot 2023-02-14 at 10.42.51.png]] 이 베르그송의 도식에서 OA는 대상에 대한 최초의 지각과 여기서 연상되는 첫번째 기억 그리고 양쪽으로 점점 팽창 > “실제로 두 이미지가 ""‘서로를 뒤따르고’, 서로를 지시하고, 서로를 반영하는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분별 불가능성이라는 동일한 지점으로 미끄러지면서 혼융되는 것처럼 보인다” (TI , 46/65) .” (Rodowick, 2005, p. 175) 이러한 분별 불가능성은 혼동을 뜻하지 않으며 시간을 함축하지 않는다. > “따라서 분별 불가능성은 혼동을 뜻하지도 않지만 연대기적 시간을 함축하지도 않는다. 결정체적 이미지는 현행적이었다가 잠재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투명했다가 불투명해지는 것도, 그 반대의 경우도 아니다. 여기에는 그 둘 간의 교차 대구, 이중 인화가 있다 여기서는 하나가 페이드-인될 때 다른 하나가 페이드-아웃되고, 하나가 이완될 때 다른 하나가 수축된다. 이때 우리는 그 둘의 순서를 알 수도 없고,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도 없다. 간접적 시간 이미지에서 시간에 대한 공간적 이미지는 합리적 (유리수적)으로 연결된 물리적 행동을 통해 연대기 적으로 측정된다” (Rodowick, 2005, p. 180) “우리는기다릴 수 없고 순간은 (다른 순간들이 지나가기 위해) 현재인 동시에 과거야만 했고 현재인 동시에 다가올 것이어야 한다. 현재는 과거로서의 그 자신, 또 다가올 것으로서 의 그 자신과 공존해야 한다 (NP,48).” (Rodowick, 2005, p. 264) ### Related ```dataview LIST FROM [[@rodowick__2005]] and -"Plans" and -"resour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