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el Serres (2025) *Humanistic Narratives*. : Bloomsbury Academic.
> [!INFO]
> Type:: [[]]
> Title:: Humanistic Narratives
> Author(s): [[Michel Serres]]
> Year:: 2025
> Tags::
> DOI::
> Citekey:: serres_humanistic_2025
> ZoteroURI:: [Open in Zotero: Humanistic Narratives](zotero://select/items/@serres_humanistic_2025)
> ReviewedDate:: [[2025-08-08]]
> Related Note: 202508152059
## C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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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res_humanistic_2025]
```
## Summary
책 『인본주의 서사(Humanistic Narratives)』는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위대한 서사(Grand Narrative)"에 기반한 새로운 인본주의를 제안합니다.** 이 새로운 인본주의는 과학적 지식(고인류학, 생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을 문학, 역사, 종교적 설명과 통합하여 인간 존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중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류의 기원과 확장**: 인류의 역사는 아프리카, 순다 열도, 베링해 지역에서 시작된 "분리"와 이후의 "망각"이라는 원시적인 장면들을 통해 전 세계로 폭발적으로 확장된 서사로 그려집니다. 이는 인류가 공통의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 **서사의 본질**: 서사는 개인('나'), 집단('우리'), 그리고 인류 전체('모두')의 존재에 필수적입니다. 서사는 혼돈을 응집력 있는 의미로 변환하고, 연속적인 과정과 불연속적인 사건을 연결하며, 인간의 삶과 의식, 지식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수단으로 제시됩니다.
- **혼돈, 음악, 언어의 탄생**: 언어와 의식은 생체적, 집단적, 우주적 '배경 소음'이라는 근원적인 혼돈에서 신호, 선율, 그리고 조음의 단계를 거쳐 출현합니다. 음악은 언어보다 더 깊은 감성을 표현하고 문화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강조됩니다.
- **악과 호미니제이션(Hominization)의 역설**: 인간의 독특함(인류화 과정)은 자연 진화 법칙(다윈주의)에 내재된 '순수한' 잔혹성에서 '일탈'하거나 '타락'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 일탈은 폭력에 대한 인식과 거부에서 시작되며, 이는 지식, 죄책감, 그리고 폭력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는 인간의 본질적인 투쟁을 촉발합니다.
- **집단의 재정의**: 전통적인 역사와 집단적 정체성('우리')이 종종 폭력과 분열을 야기했음을 인정하며, 새로운 인본주의는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세계-대상')에 직면하여 통합된 새로운 인류 공동체('모두')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우연성과 필연성의 재해석**: 위대한 서사는 필연적인 과학 법칙들이 광대한 진화 과정 속에서 우연적인 사건들로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질서가 무질서에서 어떻게 출현하는지, 그리고 그 반대의 과정도 함께 작용함을 설명합니다.
## Annotation
### 세 조각의 위대한 서사 (Three Fragments of the Grand Narrative) [5-20쪽]
이 챕터는 인류의 기원과 전 세계적 확장을 "원초적인 분리의 장면"으로 묘사하며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과 분리**:
1. **첫 번째 분리**: 약 10만 년 전 수에즈 지협에서 시작된 이동으로, 이 결정 덕분에 우리 모두가 오늘날 세계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두 번째 분리**: 약 6만 년 전 순다 제도(티모르 또는 타님바르)에서 온 어부들이 바다를 건너 호주 대륙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며 원래의 공동체를 잊었고, 역사는 이들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3. **세 번째 분리**: 약 1만 5천 년 전, 원시 에스키모인들이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미 대륙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더 온화한 지역을 찾아 남하하며 새로운 대륙을 개척했습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분리 장면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잊혀졌지만, 탄소-14 측정, 수많은 화석, 유전자 코드 등의 과학적 수단을 통해 비로소 다시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 조상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이동은 단순히 새로운 땅을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공통의 요람으로 '귀환'하는 여정으로 재해석됩니다. 이는 서양 문명이 스스로를 발견자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인류 전체가 이미 수만 년 전에 완성했던 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과거의 역사 서사(제국주의, 전쟁)가 폭력과 분열을 야기했음을 인정하며, 저자는 '위대한 서사'를 통해 과거의 분리된 역사('짧은 시간')와 현재를 연결하고, 새로운 인본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새로운 서사는 인간의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주 배경 복사, 별의 빛, 원자의 무게, 지구 지층, 화석, 분자 등 '자연의 글쓰기'를 해독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습니다.
• **음악의 보편성**: 언어나 역사와 달리, 음악은 모든 분리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버림받았다는 슬픔의 울음"과 "재회의 속삭임"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수단으로 제시됩니다. 이 서사는 전통적인 역사가 만든 '균열'을 메우고, **오랜 시간**과 현재를 연결하여 새로운 인간주의 시대의 희망을 열고자 합니다. 저는 이러한 **원초적 분리**와 **기억 및 망각의 위기**가 인류에게 보편적인 경험이며, 음악을 통해 이 **분리의 탄식**과 **재회의 울음**을 노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음악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주관적 서사: 요람으로의 귀환 (I: Subjective Narratives: The Return to the Cradle) [21-68쪽]
과거의 인간주의는 라틴어나 그리스어 연구에 국한되거나 서구의 관습을 보편화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새로운 인간주의는 고인류학, 생화학 등에서 파생된 위대한 서사를 통해 하나의 가족인 인류의 계보를 추적하며 진정한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기존의 정의들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동물을 배제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봅니다. 저는 '존재한다'는 동사가 본질이나 실존을 고정시키는 대신, '되어가는 과정'과 삶의 모호한 세부사항을 통해 인류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통적인 인본주의가 보편적 인류애를 추상적으로만 다뤘거나 서양 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인본주의는 고인류학, 생화학 등 과학적 지식(위대한 서사)을 통해 인류가 하나의 가족임을 계보학적으로 증명하며, 진정한 보편성을 이끌어냅니다.
'무엇이다(to be)'라는 존재론적 정의로는 인간이나 타자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으며, 파편적이고 유동적인 개인의 삶을 '서사'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풍부한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플루타르코스(Plutarch)의 『영웅전』 같은 평행 전기나 자서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서사는 자세하고, 유연하며, 살아있는 시간 속에서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자서전은 '위험과 불행'을 통해 '자아의 작은 변화'를 드러냅니다. 내면의 자아는 생명력 있는 열기와 신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돈스러운 배경 소음', 즉 '유동적인 무의식'에서 나타납니다. 이 소음에서 '신호'가 발생하고, 이어서 '멜로디의 시초'가 솟아오릅니다. 언어, 자아, 서사의 탄생은 열에서 소음으로, 신호로, 멜로디로, 그리고 마침내 발성으로 이어지는 네 단계의 과정입니다. 언어는 자신의 비언어적 기원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신체 내부의 생명 활동(열, 생화학적 프로그램의 부산물)에서 발생하는 혼돈스럽고 의미 없는 '허브버브(hubbub)'와 같은 소음입니다. 여기서 '신호'가 출현하고, 이어서 '선율'이 형성되며, 최종적으로 '언어'(조음)가 발현됩니다. 이 네 단계(소음 → 신호 → 선율 → 언어)는 언어와 자아가 탄생하는 '로켓' 과정으로 비유됩니다. 언어는 자신의 혼돈스럽고 음악적인 탄생을 말할 수 없으며, 서사가 이 과정을 통합하고 숨깁니다.
시간은 질서와 무질서, 연속성과 불연속성, 기억과 망각이 혼합되어 만들어지며, 이는 서사, 음악, 자아의 구성 방식과 동일합니다. 이 '템포'가 각 개인을 특징지으며 삶과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자아는 내면에서 들리는 '웅얼거림'이나 '외침'으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개별화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면 '불행, 질병, 폭력, 버려짐'이 닥치고 삶은 의미를 잃습니다. 고통과 '악(Evil)'은 서사와 노래를 침묵시킵니다. 저자는 외부의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는 '정형화된 서사'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개인의 고유한 서사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외부와 내부의 교류**: 내면의 감정(기쁨, 슬픔)은 외부 풍경(사막, 숲)과 상호작용하며 형성됩니다. 몸과 영혼은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내면의 풍경은 외부 경험과 독서, 상상력의 지도로 채워집니다. 자서전의 저자가 '나'를 창조하듯이, 인간의 언어는 '수행적(performative)' 힘을 가집니다. 즉, '말함'으로써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주와 자연 자체도 '글을 쓰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자기 인식이 자연의 자기 인식과 연결된다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정신 에너지는 소진되도록 창조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확장'하고 고통을 극복하며 서사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작가(author)'라는 단어는 '확장하다(augment)'에서 유래합니다. 우리 모두는 존재하기 위해 서사가 필요합니다. 종교, 서사, 비극, 희극 등 다양한 문학 장르의 서사들은 삶을 이해하는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새로운 서사들은 개인의 '정체성 탐구'에 집중합니다. 문학은 언어와 의식을 활성화하여 우리를 구원합니다. 저의 언어가 혼잣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와의 소통이 필수적입니다. 자아와 언어는 상호적으로 생성됩니다. 새로운 기술(이메일, 휴대폰)은 감정적 교류와 관계의 서사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며 내면의 감성을 변화시킵니다. 영혼은 '정서의 지도(Map of Tender)'나 '신비주의의 산(Mount of Mysticism)'처럼 **풍경이 있는 공간**으로 경험됩니다. ==외부 풍경은 우리의 내면과 서사에 깊이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신체를 토러스에, 영혼을 클라인 병에 비유하며 내면과 외면의 명확한 경계를 허물고자 합니다==
• **존재하기 위한 거짓말**: 때로는 '진실'의 엄격함이 삶의 연속성을 파괴할 수 있기에, 서사는 '존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며 '증강'됩니다. 자아' 언어가 '자아'를 창조하듯, 세계 자체도 결정, 별, DNA 등 그 구조를 통해 '말하고' '글을 씁니다'. 이는 인간의 언어적 특권주의를 해체하며, 모든 것이 연결된 '자아 곧 인간 곧 신 곧 자연(ego sive homo sive Deus sive natura)'이라는 보편성을 드러냅니다. 서사는 실존을 위해 필수적이며, '무(無)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때로는 '거짓말'하거나 '과장'해야 합니다. '작가(author)'라는 말은 '확장(augment)'에서 유래했습니다. 엄격한 사실보다 언어의 '음악적 기반'이 중요하며, 이는 환희와 희망을 창조합니다. 이는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입니다.
> “If God, omniscient and truthful, doesn’t err, they say, or lie, if nature itself doesn’t deceive, can I, myself, call myself veridical and infallible? No. Of course, I can be mistaken regarding some factual point; of course, my narrative can lie, but, in unifying scattered elements, it says something else, something less of the order of truth than of the order of existence.” [...] “Do I exist at the high price of truth? I don’t know, but I do know, in any case, that a game is being played here that, surpassing the game of the authentic and the falsifiable, has as its stakes life and death.” (Serres, 2025, p. 61) [...] “Should I no longer have anything to tell or recount, I must quickly invent so as to fill this hole of nothingness whose emptiness I often feel and live. So, panic-stricken, I augment. I exaggerate, swell up, replace. I create or I lie? At the ethical risk of lying, at the emotional risk of paranoia, I take myself to be a creator god having performative speech: I believe, whether firmly convinced or in bad faith, that I am truly living the way I say I am and desperately try to make it be believed.” [@serres_humanistic_2025, 61]
> > “신, 전지전능하고 진실한 존재가 오류를 범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또 자연 자체가 속이지 않는다면, 내가 과연 스스로를 참되고 오류 없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물론 나는 어떤 사실적 사안에 대해 잘못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나의 서술은 거짓일 수 있다. 그러나 흩어진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낼 때, 그것은 진리의 영역이라기보다 존재의 영역에 속하는 어떤 다른 것을 말한다.” […] “나는 진리라는 높은 대가를 치르면서 존재하는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어쨌든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진본성과 반증 가능성의 게임을 넘어, 삶과 죽음을 걸고 벌이는 게임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 “더 이상 이야기하거나 서술할 것이 없다면, 나는 종종 느끼고 살아가는 그 공허, 무(無)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재빨리 무언가를 발명해야 한다. 그래서, 공포에 휩싸여 나는 덧붙이고, 과장하고, 부풀리고, 대체한다. 나는 창조하는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가? 거짓말을 할 윤리적 위험과, 편집증에 빠질 정서적 위험을 감수하며, 나는 수행적 언설을 지닌 창조주 신이라고 스스로를 간주한다. 나는 확신하든 불성실하든, 내가 말하는 방식 그대로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필사적으로 믿게 만들려 한다고 믿는다.”
이는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입니다. 서사는 '무(無)'와 맞서 싸우고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행위자'와 '저자' 사이의 간극은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초월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고통과 **죽음의 경험**은 삶을 '서사'이자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존재의 '부활'을 이끌어냅니다.
> The gap between the actor and the author allows this latter to glimpse a quasi-totality, to perceive the actor in his performances, to stabilize his identity across his adventures and avatars. By means of his speech, the author detaches himself from the immanence in which the actor plunges, swims and struggles. By means of this doubling, by means of this distance between two presences, by means of this outlet hole that is representation, the warp and woof of the narrative is woven; by means of this fold or this hole, the cement of my life flows and hardens. This gap in time, in the nothingness, in the subject, in existence, this distance that tends to overflow projects, dreams and their rare fulfillments, the beginning and the end, birth and death, lets another dimension emerge, transcendence.
> > “행위자와 저자 사이의 간극은 후자에게 일종의 준(準) 전체성을 엿보게 하며, 행위자를 그의 수행 속에서 바라보고, 그의 모험과 아바타들을 가로질러 그 정체성을 안정시키게 한다. 저자는 자신의 발화를 통해 행위자가 잠기고, 헤엄치고, 분투하는 내재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한다. 이러한 이중화를 통해, 두 존재 사이의 이 거리를 통해, 그리고 ‘재현’이라는 출구를 통해, 서사의 씨줄과 날줄이 짜인다. 이 주름이나 구멍을 통해, 나의 삶의 시멘트가 흘러나와 굳어진다. 시간 속의, 무(無) 속의, 주체 속의, 존재 속의 이 틈, 계획과 꿈, 그리고 드물게 실현되는 그것들을 넘쳐흐르게 하는 이 거리,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이 거리는, 또 다른 차원, 곧 초월을 드러나게 한다.” (Serres, 2025, p. 66)
서사는 '행위하는 나'와 '이야기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 간극, 즉 '표상'이라는 출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삶의 전체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균열'이자 '초월'의 시작점입니다.
> “There can be no successful life without this fissure of a failed life, without an accursed share of defeats and pains, those little differential deaths, without fire burning the ramparts or shipwreck on the open sea, desert crossings, exile, exodus, without slavery or captivity, falling into poverty and dereliction, without abandonment, anguish or exclusion, without birth in the straw, passion or crucifixion. Why? Because we cannot see our lives without the shift opened up by the proximity of death, without experiencing its pain. My present is represented after my death. As in one’s final throes, life struggles against death” (Serres, 2025, p. 67)
> > 성공한 삶에는 실패한 삶의 균열이, 패배와 고통이라는 저주받은 몫이, 작은 차이들의 죽음들이, 성벽을 태우는 불길이나 망망대해에서의 난파, 사막 횡단, 망명과 탈출, 노예 상태나 포로 생활, 빈곤과 버려짐 속으로의 추락, 버려짐과 불안, 배제, 초라한 곳에서의 탄생, 수난과 십자가형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의 인접성이 열어주는 그 전환 없이, 그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우리 삶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는 나의 죽음 이후에 재현된다. 마치 임종의 순간처럼, 삶은 죽음에 맞서 싸운다.
### 우리: 집단적 서사 (We: Collective Narratives) [69-118쪽]
**전쟁과 죽음의 역사 비판**: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죽음과 전쟁의 역사'에 의해 마비된 감각으로 회고하며, 전통적인 역사 서사가 영웅주의와 살인을 미화하여 세대에게 폭력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합니다. 20세기의 수천만 명의 죽음(히로시마, 홀로코스트 등)은 과거 영웅들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며, 역사적 악행의 '완성'이자 '종말'을 의미합니다. 저는 역사를 '영원한 갈등의 체제'로 비판합니다. 역사는 살육과 죽음을 미화하고, '집단 희생을 통한 죽음'을 삶과 기억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습니다. 20세기의 참상은 이러한 살육 문화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으며, 저는 이를 '리바이어던 역사의 마지막 절규'라고 부릅니다.
> “Suddenly widened, stopped, motionless, fixed, this historical flow then began to rot. Over the entire world, the unbreathable pestilential odour of Western history spread. I have felt it, lived it, understood it: Alexander, the young conqueror, decomposes into Hitler; crowned with laurels, Julius Caesar putrefies into Mussolini; Napoleon rots into Stalin and Marshal Foch into Pol Pot; the hoplites, the Crusaders, the Grenadiers of the Guard, all those who departed carrying their rifles with innocent enthusiasm . . . ,” (Serres, 2025, p. 70)
> > 갑자기 확장되었다가 멈추고, 움직임을 잃고, 굳어버린 이 역사적 흐름은 그제야 썩기 시작했다. 전 세계로, 숨 쉴 수 없는 서양 역사의 악취가 퍼져나갔다. 나는 그것을 느꼈고, 살아냈으며, 이해했다. 젊은 정복자 알렉산더는 히틀러로 부패하고, 월계관을 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무솔리니로 썩으며, 나폴레옹은 스탈린으로, 포슈 원수는 폴 포트로 변질된다. 호플리테스, 십자군, 근위대의 척탄병, 그리고 순수한 열정을 품고 총을 메고 떠났던 모든 이들이…이제 그들은 다시 나타나, 나치로 타락하고, 스탈린주의자로 감염되며, 가미카제로 변질되고, 근본주의자로 괴사하며, ‘선’의 도끼를 휘두르는 자들로 곰팡이 피듯 변모한다. 고대의 영웅들은 오늘날 살인자들의 드러난 얼굴 속에서 드러난다.
**소속감의 리비도(Libido of Belongingness)**:
> “We participated in the belongingness illustrated by such bloody heroes [...] Who are we? Participants in our belongingness” (Serres, 2025, p. 72)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인간 행복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폭력과 분열(부족 간의 분쟁, 국가 간의 전쟁, 계급 투쟁)의 원인이 됩니다. 저자는 '묶인 팀(roped team)'의 비유를 통해 집단적 행위의 조화로움과 유대감을 인정하지만, 집단의 '라이더(Leviathan)'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는 반대합니다. 가족, 지역, 국가와 같은 집단에 소속되는 것은 행복과 연대를 주지만, 동시에 폭력과 경쟁을 낳습니다. 저는 등반대의 '우리'를 '함께 행동하는 가벼운 기쁨'의 예시로 듭니다.
• **집단의 위기**: 현대 사회는 '소속감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집단들은 더 이상 폭력과 인종주의로 얼룩진 역사 때문에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집단(국가, 정당, 종교)에 대한 '소속감의 리비도'가 약화되면서, 현대인들은 어떤 집단에 진정으로 소속될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나 '라 마르세예즈'와 같은 증오의 노래를 거부하며, '더 이상 서로를 죽이지 않는'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속하기보다는 '다양한 교차로에 존재하는' 유랑하는 시민임을 고백하며, ==현재의 '가벼워진 소속감(lightened belongingness)'이 인류의 새로운 상태임을 말합니다==. 이는 이동성, 기술 발전, 세계 시민 의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현대의 이동성, 기술(휴대폰, 이메일), 그리고 지구촌적인 관점은 '가벼워진 소속감'을 낳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정된 장소에 갇혀 있지 않으므로, '세상 속에 있음(being-in-the-world)'의 의미 자체가 변했습니다. 이 새로운 관점은 폭력적인 국경을 넘어 환대와 평화를 지향하는 유럽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는 저 자신을 여러 장소, 문화, 종교에 속하는 '나뉜' 몸과 영혼으로 묘사하며, 저의 정체성이 '어디에나, 어디에도 없는, 여기, 저기'에 걸쳐 있다고 말한다. 이는 새로운 글로벌 '시티즌(citi-netizen)'의 등장을 예고합니다
• **집단의 소음과 역사 서사의 한계**: 집단은 영혼의 혼돈에 해당하는 **'배경 소음'** 또는 '백색 소음'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모든 집단은 특유의 '소음'을 발생시키며, 이는 혼돈스럽지만 집단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 “Deafened by the cries of the dying, shouted out during the conflicts of my childhood, nauseated by the hymns of hatred and the biased narratives of history, I love, with pacified joy, silence. Almost all groups make noise [...] What does the clamour of the city signify, that sound horizon, constant like the murmuring of the sea, if not collective presence, the announcement of the we?” (Serres, 2025, p. 84)
> > “어린 시절의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절규에 귀가 멀고, 증오의 찬가와 편향된 역사 서술에 메스꺼움을 느낀 나는, 고요를 평화로운 기쁨으로 사랑한다. 거의 모든 집단은 소음을 만든다.” (세르, 2025, p. 84) 작은 모임에서 더 큰 모임으로 갈수록, 나는 이 웅성거림이 커지는 것을 듣는다. 바다의 잔잔한 속삭임처럼 끊임없는 이 도시의 소란, 이 소리의 지평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집단적 존재, 곧 ‘우리’의 도래다.
역사가들은 이 혼돈스러운 '소음'을 '선택'하고 '단축'하여 서사를 구성하며, 이 과정에서 본질적인 혼돈을 놓치거나 왜곡합니다. 역사는 개인의 삶처럼 '잊기 위한 의무'를 통해 연속성을 만들어내지만, 이는 '진실'보다는 '존재'를 위한 선택입니다. 개인의 서사가 내면의 혼돈을 '단축'시키듯, 역사 또한 과거의 '무한한 소음'을 '단축'하여 응집력 있는 서사를 만듭니다. 이는 '망각의 필수적인 의무'를 동반합니다. 역사는 이 과정에서 사건들을 걸러내며 '속이고 거짓말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From this comes the vital duty of forgetting. Yes, I would give my life for the faithful memory of the day I met you: would this life be enough to recount everything?” (Serres, 2025, p. 90)
현대는 핵폭탄, 기후 변화, 인공위성, 생명공학 등 인간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세계-대상'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전 지구적 규모의 대상들은 더 이상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통제를 넘어서며, 인류 전체가 '하나의 새로운 우리'로서 이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이 '새로운 우리'는 과거의 짧은 국지적 역사를 넘어 '호미니제이션(Hominization)'이라는 '위대한 서사'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뮤즈들은 집단의 분노와 혼돈에서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배경 소음'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연속적인 층'을 상징합니다. 춤, 음악, 비극, 역사를 통해 '상자'나 '격벽'을 구축하여 혼돈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문화는 우리를 이 '공포'로부터 구원합니다. 정치적 권력은 집단적 소음이라는 '검은 상자의 구멍을 틀어막는' 역할을 하여 대중의 분노를 억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들'(희생적 살육으로 형성된 집단)이라는 고대 상황이 끝나고 '개인(I)'과 '보편적 인류(genus)'라는 두 가지 현대적 주체가 탄생한 정확한 지점입니다.
> “Out of the three subjects, only one existed. The dead we brings about the two modern subjects: an I and a genus, the individual and the universal. Out of the three subjects, two remain. Contemporary times repeat this date.” (Serres, 2025, p. 98)
과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과 분기점에 따라 '새로워집니다'. 역사는 돌이켜보면 '준필연적'으로 보이지만, 그 전개는 '자유롭게 발현된' 우연으로 가득합니다.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서사에서 '필수적인 행위자'로 작용하며, 개인과 집단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과학은 자연 세계의 역할을 등한시하여 그 '약탈'과 파괴를 초래했습니다. 저는 '지리 없이는 집단 역사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지만, 오늘날에는 기후, 생명 자체와 같은 '세계 객체'가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이 거대한 객체들은 옛날의 분열을 초월하여 새로운, 지구적 규모의 '우리'를 '모집'하고 있으며, 이는 선사시대부터 미래까지 아우르는 훨씬 긴 시간적 지평을 요구합니다. 집단적 단결을 위해 '혐오스러운 적'이 필요하다는 믿음은 역사적으로 폭력을 초래했습니다. 이제 '세계-대상'의 등장으로 인해 갈등의 대상은 '불안의 대상'(기후 변화, 종의 멸종, 유전 공학 남용)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적'은 인간 내부의 그림자이며, 인류는 이제 '스스로와의 싸움'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적'은 더 이상 인간 경쟁자가 아니라 기후 변화나 유전 공학 같은 '세계 객체'입니다. 이는 인간 주체를 불안의 객체로 전환시키며, 갈등을 인간 대 인간에서 인간 대 세계로 바꿔 잠재적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모두: 객관적이고 인지적인 서사 (Everyone: Objective and Cognitive Narratives) [119-170쪽]
서사는 '상대적으로 유지되는 선'(형식, 필연성)과 '무작위적이고 우발적인 혼돈의 조각들'(분기, 정보)을 혼합합니다. 이는 개인, 집단, 그리고 위대한 서사 모두에 적용됩니다. 정보는 희귀성과 예상치 못한 특성에서 증가합니다
모든 서사는 '반복'과 '단절', '필연성'과 '우연성',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혼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채널(Channel)'은 반복과 질서(필연성)를 담당하고 '정보(Information)'는 예측 불가능한 단절과 희귀성(우연성)을 담당합니다.
기록된 창세기 이전에, 유전적 유산은 자기 복제와 돌연변이를 통해 생명을 번식시켰고, 이는 종의 진화와 개체 발생이라는 '이중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인간은 나중에 유전적 수단을 넘어선 '외-다윈적(exo-Darwinian) 정보 전달 경로'를 개발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는 신의 '수행적 언어(performative word)'에 의한 창조(말하면 즉시 이루어지는)와 '반복'(동일성의 원칙)을 통해 '형식(format)'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서사는 반복과 신의 '수행적 말씀'("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러자 그렇게 되었더라")을 통해 리듬, 동일성, 중복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정보 내용을 감소시킵니다. 진정으로 발전 가능한 서사는 '무질서'와 '타자성'이 이 동일성을 방해할 때 시작된다. 반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이브의 '불복종'은 '희귀성'과 '정보'를 도입하여 '역사'와 '서사'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됩니다. 즉, '악(Evil)'은 서사의 시작이자 지식의 시작입니다. 소통은 수많은 '형식' (물리적, 감각적, 형식적 규칙)에 의존합니다. 이 형식들은 일정하고 반복적이며 정보 전달의 투명한 '채널'을 형성합니다. 이 형식은 동일성의 원리를 따르며, 말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악과 함께 태어난 이상, 나는 이 악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위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사는 오직 동일성과 결별하고, 수행적 발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세우며, 반복 속에서 갈라져 나올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브는 그 각도를 열어, 영원에서 시간이 태어나게 하고, 지속되는 단조로움 속에서 다중적이고 상황적인, 개별적이며 다양한 말들이 태어나게 했다. 악마에 대해, 나는 그저 갈라진 두 발가락 달린 발만을 본다.
• **연속 스펙트럼의 전개 (변주_**: 소수는 서열(형식) 속에서 희귀성과 예상치 못한 특성(정보)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이미지 역할을 합니다. 하와의 '불복종'과 '타락'은 최초의 '희귀성'과 '정보'를 상징하며, 동일성의 원리를 깨고 역사와 서사를 시작합니다. 그녀는 '분기'와 '시간'을 영원에 도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악은 '동일성의 굴절'입니다. 역사의 소음과 분노는 서사에 의해 덮입니다.
• **세 번째 변주: 물리학**: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원자론(모든 원자가 평행하게 떨어지다가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미세하고 우연적인 '기울어짐'으로 질서가 파괴되고 만물이 엮이는 현상)과 근대 과학의 탄생(수학적 필연성과 실험적 우연성의 접합) 또한 필연성 속의 우연성을 통해 서사, 시간, 역사가 시작되는 이소모픽(isomorphic)한 모델로 제시됩니다. 과학의 진보도 '반복'을 깨는 '실패'나 '오류'('반증 가능성')에서 비롯됩니다. 근대 과학은 보편적인 수학적 원리(필연성)와 현실의 '특이점'(우연)이 '접선하는 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과학 실험에서의 '반증'은 하와의 불복종처럼 희귀성과 정보를 도입하여 과학적 진보를 이끌어냅니다. 수학은 세계의 '형식'을 기술하는 것이지, 인간적인 의미의 언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 **네 번째 변주: 생명**: 생명의 진화는 생화학적 수준에서 시작되며, '자기 복제'의 반복 속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mutation)'와 '번역 오류'가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여 진화와 발전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창세기, 루크레티우스, 근대 과학에서 보았던 동일한 '필연성 속의 우연성' 모델의 반복입니다. 이는 무생물의 반복적 법칙에 무질서를 도입합니다. 이후 선택압력이 이러한 창조물들을 걸러냅니다.
• **위대한 서사의 새로운 독창성**: 모든 서사(내면적, 집단적, 과학적)는 필수적인 연속체와 불연속적인 우연적 사건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지식의 스펙트럼을 형성합니다. 위대한 서사는 기존의 스펙트럼을 넘어섭니다. 이는 필연성이 우발적으로 연결된 상황의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우연과 필연성의 관계를 역전시킵니다. 각 분기점에서는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법칙이 나타나 **정보 내용**이 됩니다. '위대한 서사'는 이 모든 과학적 지식과 서사를 통합하며, 필연성과 우연성의 관계를 역전시킵니다. 즉, 기존 서사에서 우연성이 필연성에 종속되었다면, 위대한 서사에서는 '정교한 법칙들(필연성)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우연적 상황'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빅뱅 이후의 우주 진화, 단세포 생명체의 출현,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등 거대한 시간의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법칙들의 연속적인 분기 과정을 설명합니다. 이로써 '위대한 서사'는 인류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며, 주관적 서사와 객관적 서사, 인문학과 과학을 통합하는 다리가 됩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존재와 기쁨의 측면에서 환희를 가져옵니다. 필연성이 '모방 불가능한 우연성'으로 변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경험입니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평범한 노동을 '필수적인 작품'으로 변모시킵니다.
**주관적, 집단적, 따라서 상대적**: 저는 추상적 이성에서 인간 서사로의 '순례'를 인정하며, 다른 문화권의 친구들도 위대한 서사의 '보편성'에 도달하기 위한 각자의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제안합니다. 오늘날 인류는 짧은 역사가 아닌 공동의 **위대한 서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 세 가지 호미니제이션 서사 (Three Narratives of Hominization) [171-200쪽]
이 마지막 챕터는 인류화(hominization) 과정을 세 가지 다른 문화적 서사를 통해 깊이 탐구하며, 인간이 어떻게 동물의 상태를 벗어나 현재의 존재가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 **성경: 히브리적 버전**: 저는 인류의 기원을 '우연히 발견된 낙원'(에덴)과 하와의 '타락'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와의 천재성은 생명에 내재된 '잔혹함'과 '죄'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인간화(hominization)'의 시작이었습니다. 원죄는 인간화 과정에 영구적인 장애물이지만, 동시에 폭력에 맞서 싸우는 끊임없는 재시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애증'으로부터, 그리고 '진화로부터의 이탈'과 악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태어납니다. 이브는 자연의 '순수한' 잔혹한 법칙(다윈적 진화, 약육강식)을 '인식'하고 '혐오'함으로써, '무지한 무죄(innocence)'의 상태에서 벗어나 '죄책감'과 '슬픔', 그리고 '지식'을 획득합니다. **이 '벗어남(deviation)'과 '분기(bifurcation)'가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며, 끊임없이 폭력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본질적인 투쟁을 촉발합니다.** '악(Evil)'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법칙을 인식하는 인간의 주관적, 인지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객관적인 것'입니다. 이브의 죄는 인류화의 '원죄'이자 영원히 되풀이되는 인간의 싸움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이탈은 인간을 동물적 무지로부터 분리시켰으며, 문화적 가능성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다윈주의적 법칙을 따르면서도 그 잔혹함을 인식하고 부끄러워하며, 이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에서 이탈합니다. **지식은 인간의 조건**이 되었고, 악의 뿌리에 지식의 뿌리가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 이후, 인류는 농업과 가축 사육을 통해 선택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는 유전 공학과 나노 생명공학 등을 통해 돌연변이까지 조작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자기 진화(auto-evolution)'**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류의 본성을 '두 번' 태어나게 했고, '세 번째'로 태어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 **우화: 그리스적 버전**: 호메로스와 라 퐁텐의 우화에서 키르케가 선원들을 동물로 변모시키는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동물적 본성으로 퇴행하는지와 그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호메로스(Homer)의 오디세우스와 키르케(Circe) 이야기에 라 퐁텐(La Fontaine)이 살을 붙인 우화는 인간이 쉽게 동물로 변하지만,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선원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동물적 본능'으로 회귀하며, 인간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수행(ascesis)'의 과정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끊임없이 동물성을 벗어던지려는 인류화의 노력을 상징합니다. 이 우화는 '인간화의 길고 고통스러운 인내'와 '번개처럼 빠른 퇴락의 자유로움'을 드러냅니다. '존재한다'는 동사는 인간의 지속적인 동물-인간 투쟁을 정의하기에는 무의미합니다.
• **물신 페티시: 글쓰기 이전의 버전 **The version before any writing**: 고대의 키메라(케찰코아틀, 케루브 황소, 동굴 벽화)는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진화'와 '동물 상태에서 어렵게 벗어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퀘찰코아틀(Quetzalcoatl)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케루브(kerubh) 같은 동물-인간 혼합형 형상, 라스코 동굴 벽화의 반인반수 그림들은 글쓰기 이전 시대에 인간이 자신들이 동물의 상태를 벗어나 인간이 되는 '진화 과정'을 인지하고 이를 '종교적(sacred)' 의식을 통해 형상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혼합된 형상들은 동물의 특성(네 발, 날개)이 인간의 지성(머리)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나타내며, **종교는 이 '탈동물화(de-species)' 또는 '탈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합니다**. 이 인류화 과정은 고통스럽고 점진적인 '피부 벗기기'와 같은 자기 변형의 연속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종교적인 영역은 이러한 '변태'와 동물적 프로그램으로부터의 '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기술 또한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이 과정에서 유래합니다. 인간화는 '탈전문화'되고 '탈프로그래밍'되며 보편성을 향해 '환희'로 나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환희'를 동반하며, 이는 종교적인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세 가지 인류화 서사는 인류가 자연 진화의 결정론적 법칙에서 벗어나('이탈' 또는 '변이'), 지식과 의식, 선택 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재창조하며, 끊임없이 '인간이 되어가는(becoming human)' 과정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인류의 미래를 형성해나가는 희망적인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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