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ul Veyne (2023)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Seoul: Philosophik.
> [!INFO]
> Type:: [[]]
> Title::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 Author(s): [[Paul Veyne]]
> Year:: 2023
> Tags::
> DOI::
> Citekey:: veyne_greek_2023
> ZoteroURI:: [Open in Zotero: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zotero://select/items/@veyne_greek_2023)
> ReviewedDate:: [[2025-05-30]]
> Related Note: 202506061541
## C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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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yne_greek_2023]
```
## Summary
## Annotation
### 머리말 (Foreword) [2-5]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신화를 믿었는지 여부를 탐구하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2] 저자는 "믿는다"는 말 자체에 여러 의미가 있음을 지적하며, 그리스 신화에 대한 믿음을 사례로 삼아 믿음의 존재 양식(modalitês de croyance)의 복수성(pluralité)을 연구하고자 합니다. [2] 저자의 핵심 주장은 진실 그 자체가 상상력의 산물이며, 실재론적 경험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역사적이라는 것입니다. [3]소위 '픽션'이라고 불리는 것들(예: 《일리아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나름대로 진실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이미 상상력이며, 상상력은 언제나 권좌에 있었습니다. [3, 4]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은 칸트적인 의미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초월적(transcendantale) 능력이지만,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4, 5] 인간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만들듯이 그것을 만듭니다. [5]
### 들어가며 (Introduction) [6-13]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라는 질문은 "믿는다"는 말의 다양한 의미 때문에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5] 모두가 미노스가 저승에서 재판을 하거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쳤다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 시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5] 투키디데스 같은 역사가들은 신화를 이성(Logos)에 의해 정화된 역사적 핵심을 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6] 이는 오류와 진리가 대립하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6] 신화 비판은 허구나 불가사의와 싸워 완승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0] 사람들이 어떻게 전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는가는 근대 역사학의 시작과 관련됩니다. [10] 저자는 근대 역사학이 원사료와 이차사료의 구별에 토대를 둔다는 모밀리아노의 주장을 언급하며, 이 구별이 고대에는 타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제기합니다. [11, 12] 고대의 역사학은 근대와 이름만 같을 뿐 달랐습니다. [14]
### 역사적 진실이 전승이자 불가타일 때 (When Historical Truth is a Tradition and a Vulgate) [14-44]
고대 역사가들은 출처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역사적 진실이 일종의 불가타(vulgate), 즉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의 합의로 진짜라고 인정받은 텍스트라는 개념에 기반했습니다. [15, 21] 원사료와 이차사료의 구별은 의미도 쓸모도 없었습니다. [21, 22] 고대 역사가들은 선배 역사가들의 글을 전승으로 간주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사료로부터 가공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서로 주고받고 재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3, 25, 27] 그들은 선배 역사가들이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가정했습니다. [24] 출처 언급은 주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에 한해서 이루어졌습니다. [17] 진실은 작자 미상이며 오류만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보았습니다. [18] 고대 역사가의 청중은 전문가가 아닌 혼합적인 대중이었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권리나 책략을 쓸 자유를 가졌습니다. [35-42] 학술적인 주석 달기는 신학적인 논쟁과 법률적 관행에서 유래했습니다. [38] 대학의 성장은 지적 활동을 독점하게 하고 역사가가 동료 역사가들을 위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39] 파우사니아스나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거의 믿지 않는 전설이나 사실을 태연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독자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39-41] 근대 역사가에게는 학문적 정직성 위배이지만, 고대에는 허용되었습니다. [41] 고대 후기에 문헌자료를 대하는 새로운 태도가 나타나지만 (예: 에우세비오스), 이는 원사료/이차사료 구별이 아니라 **'절대적 객관성'** 이라는 원칙, 즉 기록된 것은 알아야 할 사물들의 일부라는 태도에 기반했습니다. [43-46] 이러한 태도는 신화를 보존하는 데 적합했습니다. [47]
### 진실한 세계들의 복수성과 유사성 (The Plurality and Similarity of True Worlds) [45, 46, 48-81]
고대 그리스 신화는 종교와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주로 구술적인 성격을 띤 민중적인 문학 장르였습니다. [56, 57] 신화의 세계는 일상적인 현실과는 다른, 고상하고 경험적이지 않은 시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는 경험적이기에는 너무나 멋진 세계였습니다. [60, 64] 사람들은 이 전설의 세계를 일상적인 현실을 믿듯이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믿었습니다. [60] 신화의 시공간과 우리의 시공간이 별개라는 사실은 그것들의 유사성에 의해 은폐되었습니다. [60, 61] 핀다로스의 시는 신화가 승리자를 더욱 고상한 세계, 즉 시인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67-69] 이는 사회적 기능이나 메시지 전달보다는 시인과 청중 사이에 관계를 수립하는 **화용적 역할(rôle pragmatique)** 을 수행했습니다. [71] 신화는 **칭찬이라는 발화내적행위(illocution)** 를 수행합니다. [73, 74] 허구와 현실의 차이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사물 자체 안에 있지 않고, 주관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77] 상이한 '진실 프로그램'이 있을 뿐이며, 우리는 각 프로그램 안에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입니다. [77] 신화는 작자 미상의 이야기로서, 사람들이 '이야기되는 것'을 반복하는 데 본질이 있었습니다. [81] 이는 계시나 신비로운 비밀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82] 이러한 앎의 방식(mode de connaissance)은 타인의 말을 신뢰하는 데 기반합니다. [83, 84] 신화 비판의 발생은 '현존하는 사물들의 원칙'(과거는 현재와 유사하며 신비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반합니다. [85, 86] 이는 조사(historia)의 방법으로부터 탄생했습니다. [87]
### 지식의 사회적 분배와 믿음의 존재양식 (Social Distribution of Knowledge and Modes of Belief) [82-85, 87-130]
믿음의 존재 양식은 진실을 소유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으며, 여러 세기에 걸쳐 복수의 진실 프로그램이 존재하며 지식 분배에 관여했습니다. [97] 타인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널리 퍼진 믿음의 존재 양식입니다. [85] 이는 전문가를 신뢰하는 한 지속됩니다. [101] 일상적인 경험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은 참도 거짓도 아닌 **제3의 무엇(tertium quid)** 이었습니다. [101] 불신은 두 가지 원천에서 발생합니다: 타인의 말에 대한 반발과 직업적으로 진리를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조사자, 역사가)의 형성입니다. [109, 110] 이러한 전문가들의 눈에는 신화가 현실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115] 역사가는 설명하기보다는 해석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역사적 변화를 예측 불가능한 발명처럼 보는 시각과 연결됩니다. [119-125] 역사가 창의적이라면, 근거 없고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129] 서로 모순되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이는 지식이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진실 프로그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30, 131] 진실 프로그램은 구성적 상상력의 산물로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를 사회화시키는 객관적 정신입니다. [132] 이는 역사초월적이지 않고 **간역사적(interhistorique)** 입니다. [133]
### 믿음의 사회적 다양성과 두뇌의 발칸화 (Social Diversity of Belief and Balkanization of the Brain) [86, 134-205]
사람들은 질문할 권리가 없는 사안에 대해 무지하며, 존경할 만한 타인이 믿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진실들의 관계는 세력 관계입니다.
[@veyne_greek_2023, 96]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영역과 영웅들의 영역을 구별했습니다. [135]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있었지만, 영웅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영웅들은 인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37] 대중의 순진함과 학자들의 비판 사이에서, 믿음의 사회적 다양성이 공존했습니다. [138, 139] 개인의 내면에는 반쪽짜리 믿음, 망설임, 모순이 생겨났고, 상이한 층위를 오가는 놀이의 가능성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두뇌의 발칸화(Balkanization)** 입니다. [139]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공존하는 현상이 보편적입니다. [206] 학자들(디오도로스, 에우헤메로스)은 신화에 합리적인 해석을 부여하여 역사로 변장시키려 했습니다. [153, 154] 이는 대중과 학자들 사이의 믿음의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합니다. [154] 믿음의 사회적 다양성과 '두뇌의 발칸화'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진실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131, 159, 190]
### 이 사회학의 뒤에는 암묵적인 진실 프로그램이 있다 (Behind This Sociology is an Implicit Truth Program) [207-250]
신화 비판은 신화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진실한 토대를 재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192] 그리스인들에게 진실은 변질될 수 있지만, 무(nothing)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193, 232] 진실은 자연스럽고 오류는 변질의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246] 따라서 어떤 신화도 완전히 신화적이기만 할 수는 없으며, 얼마간의 진실을 내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3, 220] 신화는 거짓이 섞인 역사적 진실이거나, 비유적인 의미의 진실, 혹은 진실의 바탕 위에 덧붙여진 것이었습니다. [220, 221]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말(담론)** 은 단순한 거울과 같아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고 생각했습니다. [232]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추는 것은 불가능하며, 신화가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존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233] 팔라이파토스와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신화에서 물리적으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제거하고, 언어의 혼란에서 생겨난 오류들을 바로잡아 진실한 토대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225-228] 역사가 이른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항상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240] 사실들과 해석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241]
### 어떻게 신화에 그 근원적 진실을 되찾아줄 것인가 (How to Restore the Original Truth to Myth) [251-262]
신화를 순수한 역사적 전승으로 만들려면, 현재 실재하는 것과 명확한 대응물을 찾을 수 없는 부분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236] 물리적으로 믿을 수 없는 부분(팔라이파토스)과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부분, 즉 신과 인간의 공존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237] 에우헤메로스설, 즉 신화가 실제 역사를 반영한다는 가설은 많은 사상가의 호응을 얻었는데, 이는 신화의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하고 신을 인간으로 환원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242] 일단 전승의 부정확함을 바로잡으면 진정한 사실들이 얻어지는데, 이는 구전/기록된 신화 문학이 역사가 가진 연대기적, 인물 탐구적, 전기적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48] 신화적 시간은 깊이나 척도가 없었지만, 영웅들에게는 계보가 존재했습니다. [248, 249] 초기의 신화 수집가들은 이러한 계보를 통해 연대기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249] 과거를 완전히 아는 일은 왕들이나 원형적 인물들의 완전한 명단을,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혈연관계를 아는 것으로 환원되었습니다. [255] 이러한 계보학적 문학은 '기원(aitia)' 또는 '창건(katastasis)'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257, 258] 이는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259] 각 도시나 민족은 신화적 기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과시했습니다. [259]
### 판에 박힌 말처럼 사용되는 신화 (Myth Used Like Clichés) [131, 206, 262-304]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신화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지만, 의례나 연설 등에서 신화를 사용했습니다. 신화는 수사학적 진실, 즉 **판에 박힌 말(langue de bois)** 처럼 사용되었습니다. [262, 263] 웅변가들은 도시의 기원을 찬양하며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이는 도시를 인격체로서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269] 이는 집단의 영광을 찬양하기보다는, 시민 개개인이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강화했습니다. [271] 수사학의 존재와 역사가의 비전문적인 성격은 신화에 대한 불신의 또 다른 원천이었습니다. [275, 276] 모순된 믿음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공존하는 현상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206] 만일 우리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다면, 이는 우리의 지식이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31, 279-283] 진실 프로그램은 구성적 상상력의 산물로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를 사회화시키는 객관적 정신입니다. [132]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프로그램을 따르는지 모르면서 자신이 옹호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부릅니다. [305, 306] 진실은 권력에의 의지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집단적 자기만족의 얇은 막입니다. [306]
###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파우사니아스 (Pausanias Unable to Escape His Program) [307-329]
파우사니아스는 자신이 보고하는 문화적 신화들을 믿었을까요? 그는 책의 마지막에서 자신이 수많은 신화들을 순진함의 표현으로 여겨왔다고 고백합니다. [307] 그는 합리주의를 보여주지만, 우리 자신의 합리주의와는 다릅니다. 그는 때로는 역사가이고 때로는 문헌학자입니다. [308] 그의 신화 비판은 그가 신들에 대해 고상한 관념을 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08] 그는 신앙심에서 자신이 기록하는 전설들의 거의 대부분을 스스로 비난합니다. [308] 하지만 문헌학자로서는 전설들을 아무 판단 없이 기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08]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사상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308] 그는 신화의 내적 일관성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예: 청동 주조 기술), 이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요구를 신화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314] 파우사니아스가 신화 대부분을 믿지 않은 것은 신앙심에서였습니다. 그는 신을 믿었고 심지어 기적도 믿었습니다. [317] 그는 신화가 때로는 알레고리나 모호한 암시를 통해 진실을 말하고 때로는 글자 그대로 진실을 말한다고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면 거짓에 의해 변형되었다고 의심할 수 없으므로)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323, 324] 이는 논리적인 발전이지만, 그의 인식에 작은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318, 324] 그의 진짜 생각은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유치한 부분을 제외한 기억들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328, 329]
### 위조자의 진실과 문헌학자의 진실 (The Forger's Truth and the Philologist's Truth) [47, 132, 133, 330-358]
파우사니아스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왕들의 명단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330] 상상력이 진실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진실 프로그램의 문제입니다. [330] 역사가는 역행하는 예언자이며, 역사는 인물들의 이름을 발명하는 소설과 같습니다. [330, 331] 위조자의 저서도 때로는 놀랄 만큼 엄밀하며, 그들의 상상력은 어떤 진실 프로그램을 따라갑니다. [333] 위조자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입니다. [334] 모든 것에는 제철이 있으며, 어떤 시대의 프로그램에 부합하는 창작이 다른 시대에는 속임수나 실패작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335, 336] 포리송의 사례는 극단적인 의심(프로그램)을 불균등하게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보여줍니다. [336-339] 위조자의 패러독스(우리는 항상 다른 프로그램의 위조자이다)는 그가 다른 프로그램을 시용하는 이방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339] 사실들에 관한 논의는 항상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340] 사실들은 해석 안에서만 인식 가능합니다. [341] 역사학의 탄생은 일차사료/이차사료 구별이 아니라, 사료와 현실의 구별,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의 구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33] 그러나 에우세비오스와 같은 학자들은 책과 사물을 혼동했으며, 기록된 것은 알아야 하는 사물들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133, 343-345] 이러한 태도는 신화를 보존하는 데 적합했습니다. [47] 고대 유대교는 이민족의 신들을 부정하기보다는 약하거나 가치 없다고 비난했으며, 이는 부정보다는 경멸에 가까웠습니다. [359] 국가들은 참/거짓의 관념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360] 조금만 숙고하면, 진실이 없다는 생각이 과학적 진실이 잠정적이라는 생각보다 특별히 더 역설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360] 문화는 거짓도 아니고 참도 아닙니다. [361, 362]
### 문화와 진실에 대한 믿음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성 (The Necessity of Choosing Between Culture and Belief in Truth) [305, 306, 359-398]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상상력의 산물들을 믿습니다(종교, 과학 이론, 문학, 정치). [368] 진리를 자처해온 이 연속된 '꿈의 궁전들'은 극히 다양하며, 이를 구성하는 상상력은 아무 일관성도 갖지 않고 역사적 우연성에 따라 움직입니다. [251, 369] 진실은 그 자체로 자명한 지표이기는커녕, 가장 가변적인 척도입니다. 그것은 초역사적인 상수가 아니라 구성적 상상력의 작품입니다. [369] 문화적 궁전들은 무(nothing)의 한가운데 지어지며, 그 자체로 사물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 질서 안에서만 진실이 인식됩니다. [380-382] 진실은 임의적인 조명이며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390, 391] 이 조명은 다른 조명보다 더 참되지 않습니다. [391] 진실을 표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현대철학과 그 위조물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해줍니다. [391] '문화가 거짓도 아니고 참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62] 신은 만물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진실을 창조했다는 데카르트의 관념을 인간의 구성적 상상력에 부여할 수 있습니다. 모델 없이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362, 397] 진실도 허위도 없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이상하지만, 곧 익숙해집니다. 진실의 가치는 무용하고 언제나 양면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우리가 취소할 수 없는 선택들에 붙인 이름입니다. [397]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가 아니기에 불행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불행하지 않고 흥미로워할 뿐입니다. [305] 역사적 성찰은 진실 프로그램들을 규명하고 변천을 드러내지만, 이는 어떤 강력한 하부구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의 여정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306, 398] 그것은 우연에 따른 방랑입니다. [398] 이 책의 취지는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믿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들의 믿음이 우리에게도 해당됨을 밝히고 이 근본적인 진실이 함축하는 바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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