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 이 글은 [[202308262115|80초 이야기 중간 감상]]에서 쓰였음 # 영상에서의 공간 영화에 대한 접근은 여러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제가 작업을 통해 알아보고 싶은 것은 예술 영화, 그 중에서도 실험적 작업들의 공간입니다. 영상은 여러 감각, 빛, 소리, 움직임 등등을 사용할 수 있는 매개된 이미지로 복잡하고 다채로운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영상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재현한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이동시킨다고도 이야기되어 지지만^[이에대해 영상은 대략적으로 창문, 문, 거울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창문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프레임에 대한 이야기는 ([[@friedberg_virtual_2009]])에서 자세히 이야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제 글에서 더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에리크 로메르가 주장한 화가와 건축가의 방식은 영상의 공간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화가라는 이미 공간이 존재한다고 보며 그것을 묘사하는 이들과 건축가라는 촬영을 하면서 공간을 창조하는 실제 공간과 더 이상 아무 관련이 없는 공간을 구상하는 이들로 두 방식을 큰 틀에서 분리합니다.^["Up until film, one had to either paint a painting or describe something. Being able to photograph, to film, brings us a fundamentally different knowledge of the world, a knowledge that causes an upheaval of values." ([[@rohmer_taste_1989]], 11)] 건축가들에게 있어서 "목표란 기존의 공간을 우리의 눈앞에 살아있게 만드는 것, 즉 사물들 간의 거리와 관계들이 실제 시계와 닮은 공간이 되도록 하는데" ([[@handyside_erickr_2017]], 140)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시: 프리츠 랑,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에리크 로메르) 그가 보기에 카메라를 이용하는 영화는 무엇보다도 '기계'로 실재 세상을 재구성합니다. > 나는 <mark style="background: #FF5582A6;">영화적 미장센이라는 것이 축소보다는 확장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발화되는 순간 매우 짧은 그 무엇인가의 삶을 연장해야한다고 믿습니다.</mark> ([[@handyside_erickr_2017]], 105) 이러한 영화의 로메르와 바쟁의 경우 실재와 결을 같이 하는^[카히르 뒤 시네마를 시작한 로메르와 바쟁은 실재로 그 시작점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60-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카히르와 인연이 끊어진 로메르 였지만 커다란 특징 "film transforms or transfigures reality, but it is reality itself – reality in all its beauty and mystery, life and not its mere semblance – that appears before us, transformed or transfigured in, or by, the medium of film."을 공통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에 대한 감각은 인간이 오감을 통해 단지 자연의 기하학적 패턴을 구분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추상적 공간을 마음속에 그려내며 그 공간에 자신들의 감정, 이미지, 생각들을 촉지적 물질로 만들어낸다" ([[@tuan_space_2001]], 17) 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에는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커다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재적인 것—세상과 상상적인 것—매개되거나 재현되어진 세상의 변증법적 놀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질 들뢰즈는 이러한 운동이 “ 이 운동들은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서로 침투하여 섞이고 결합하는 그 어떤 초월적인 점을 제시하거나. 또는 반대로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간의 날카로운 경계선을 그들의 차이를 가르는 것으로서 제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들뢰즈는 이러한 관계 설정에 대해 구조주의의 첫 번째 규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관계를 통해서 변증법적 제 3의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발견하는 것이 바로 구조주의의 첫 번째 차원을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deleuze__2007]], p. 366) 이러한 두 질서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은 상징적인 질서이며 이를 정립하는 것을 통해 공격적이고 해석적으로 작품에 관여합니다. 이러한 "놀이"는 푸코가 탁월한 솜씨로 분석했듯이 시대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집니다. 푸코에 따르면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지식을 "기호의 해석"으로 이해하며 유사성의 영역을 통해 기호의 "놀이" 관계를 이해하였습니다. 17세기 이후 유사성의 놀이는 무너지고 재현의 놀이가 중심이 되었다고 푸고는 설명합니다. 이에 따라서 그림도 언어도 더 이상 기호를 추정과 해석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재현하는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합니다. 재현은 성질과 그 성질을 가르키는 기호 그리고 그것에 대한 관념의 삼자 관계로 이루어지며 이는 세상, 기호 그리고 인간과 대응하게 됩니다. 이러한 놀이의 공간은 푸코에게 있어서 앎과 사유의 공간이며 또한 지식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 사유하기와 나의 밖을 사유하기는 물결처럼 서로에게 공명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또한 어우러집니다. 이렇게 질문은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을까요?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기 가능한 공간일까요? 들뢰즈가 말하는 장치 혹은 구조라는 것은 figure로도 form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diagram으로 끊임 없이 주름을 만들어가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다시말해 > 현대성과 관련하여 철학이 해야 할 일이란 […] 온갖 희생을 무릅쓰면서 현대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은 곧 니체가 '반시대적인 것 '이라고 지적만 것을 현대성으로부터 찾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의 반시대적인 것이란 현대성 자체에 속해 있지만 ‘(본인이 바라건대 )다가올 시간을 위해’ 현대성에 맞서는 방향으로 되돌려져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플라톤 주의를 뒤집다 [[@deleuze__2007]], 52) 잠재적이고 불확실한, 혹은 반시대적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또한 끝나가고 있는 것과 형성되고 있는 것 사이에 위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라기엔 멀지 않은 그리고 미래라기엔 가까운 위치에서 나를 다시 한번 위치시키는 것을 통해 움직여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life라고 불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태어나는 순간에 시작되어 의식이 소멸할 때까지 함께하지만 마치 그것은 분리되어진 프레임처럼 연속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상상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르그손이 이미 우리에게 보여준 바 있듯이 , "회상이란 지각된 대상 이후에 구성되는 현실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현실적인 지각과 함께 공존하는 잠재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deleuze_actual_2007]], 150) 우리는 일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현실적인 대상의 분신을 만들어가며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사이의 분열과 공명하는 교환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명을 통한 차이, 긍정적 차이는 내가 살아가는 생성을 만들어 나갑니다. ^[차이에 대해 저는 변증법의 부정보다 베르그송-들뢰즈의 차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한 변증법이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지만) 베르그송-들뢰즈의 차이는 상태의 차이보다는 운동적 특면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지속으로 이야기되어 집니다. 대립되는 것이 아닌 운동, 변화, 생성에 유래하는 이 차이는 그 자체로 변화부쌍한 life를 이야기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deleuze_notitle_2004]]를 참조해주세요.] > “그것은 현실적인 것과 그 현실적인 것의 잠재적인 것 사이에 행해지는 과정으로서의 개별화 individuation이다 .” ([[@deleuze__2007]], 523)^[([[@deleuze_actual_2007]], 150) "Il n'y a plus inassignabilité de I'actuel et du virtuel, mais indiscemabilité entre les deux termes qui s'échangent." ([[@deleuze_dialogues_2002]], 184) ## Related Notes ```dataview LIST FROM [[202308281057]] and -"Plans" and -"resources" ```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