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duction 인간은 세상 속에서 경험하고 느낌을 통해서 기억하고 미디엄을 통해 공유한다. 경험이란 것은 무엇인가 real experience란 무엇인가. 나는 신체와 느낌의 통합적 경험을 통해 구성되고 세상은 집단적이거나 리딩된 개념들과 사상들을 통해 구성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통합적이고 파편적이며 nonlinear and collective. 이러한 관계는 라캉의 스크린 개념을 통해서 더욱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Jacques Lacan|Lacan]] 이러한 경험의 파편성은 그럼에도 역사속에서 접근법에서 변화를 보여준다, 즉 내러티브적인 것과 이벤트적인 경험으로의 변이이다. [[Thomas Elsaesser]]는 그의 에세이에서 현대 영화의 과잉과 한계성의 특정 특징에 주목하고 이를 신체, 시간, 행위의 세 가지 영역에 걸쳐 매핑함으로써 기술 미디어의 정서적 핵심을 찾으려는 벤야민 자신의 시도를 재평가하며 벤야민의 근대성 개념의 핵심인 '경험'이라는 용어를 논쟁에 끌어들인다. 그의 _에르파룽_ 과 _에를레비니스_ 의 구별을 되살리려고 제안한다. 그는 영화와 미디어 연구에서 감정과 정서에 대한 '전환'은 (정신분석학적 동일시 개념을 모델로 한) 이전의 관중 참여 이해 방식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현대 영화는 관객에게 충격적이고 몰입적이지만 단편적인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이는 벤야민이 지적한 근대적 경험의 단절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Hal Foster]] 트라우마적 경험은 이제 특정 역사적 사건과 연결된 개념이 아니라, 경험 자체의 위기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현대 영화는 Erfahrung의 붕괴를 Erlebnis로 재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트라우마적 경험의 구조를 직접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현대 사회에서 경험은 테마형 환경 속에서 통제되고 구조화된다. 쇼핑몰, 테마파크, 관광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지만 철저히 조절된 환경이며, 이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몰입을 유도하지만, 기획된 형태의 경험만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현대의 경험은 Erfahrung이 없는 Erlebnis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으며, 이는 경험이 철저히 조작된 환경에서만 이루어지며, 오히려 트라우마적 경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벤야민의 개념을 적용하면, 포스트클래식 시네마와 현대 미디어 문화는 경험 개념 자체의 한계를 시사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그는 영화적 경험이 근대적 프로젝트 속에서 어떤 개념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이를 통해 경험 개념의 종말을 의미하는지, 혹은 새로운 감정 연구 및 영화적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는지는 열린 질문으로 남긴다. 그가 글 초기에 지적했듯 그가 말하는 트라우마적 영화적 경험은 분명 일상적 경험과는 다르다. "영화 관람을 하나의 경험 방식으로 생각할 때, 관객의 조건과 이러한 조건이 생성하는 정서적 반응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각-감각적) 문화의 일부이며, 변화의 영향을 받으며 미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관점에서도 분석될 수 있다. 특히, 사건, 관객 경험의 배열은 문화적 기억과 관련된 문제를 시사하며, 이는 다시 영화가 이러한 기억을 수사적으로 조직하고, 기술적으로 저장하며, 문화적으로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컨템포로리의 경험이 마지막 그가 주장했듯 몰입적 철저히 조절된 환경으로 존재한다면 normative or daily [[Erfahrung]]을 우리는 더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어느 시간이나 몰입적 영화 세상에 살게되며 이는 [[Thomas Elsaesser|Elsaesser]]가 묘사한 [[Erlebnis]]가 결여된 현대적 [[Erfahrung]]의 공간들처럼 "연출된 사건, 시뮬레이션된 위험, 수행되는 정체성—모두 ‘안전하고’, ‘익숙하며’, ‘폐쇄된’ 형태로 존재한다" [@elsaesser_between_2009, 109]. 나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주체성을 주체성 그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over-look하는 방식을 채택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그림자를 통해 그 contour을 caress하는 것과 같은 불분명성을 불러오면서도 또한 그러한 방향에서 하나의 감각 개념 혹은 형체(시각)에만 한정하지 않는 방향성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나는 미학에서 특히 [[Hal Foster]]에 의해서 접근된 불안정한 형식성에 대한 입장과 그에 확장하여 역사성의 불완전한 믿음으로 넘어가 주체성을 형체와 역사적 개념적 주체성의 흔적들을 만져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 속에서 나는 단지 트라우마적 경험 혹은 경험 개념 자체의 한계 속에서 경험이란 개념의 무너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트라우마 속에서 개인들의 주도적인 표출과 저항을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연출되고 시뮬레이션되고 수행되는 dailiness가 어떤 방식으로 거부되고 이를 통해 다시한번 치료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질문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일기적 수행, 즉 위기의 이벤트 속에서 과잉의 포용이 [[Thomas Elsaesser|Elsaesser]]의 질문 중 하나인 "아마도 나는 이 제안을 더욱 확장하며, 다소 도발적인 가설로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장소에 대한 지각의 실패, 고통스러운 기억, 인과관계의 불확실성, 현재 속에서 과거 사건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시간성이 뒤섞이는 경험(일반적으로 트라우마와 연관되는 요소들)을 겉보기에는 전혀 무관하거나 오히려 반대되는 현상, 즉 관광 도시, 쇼핑몰, '공원',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월드'와 같은 '테마형 환경(themed environments)'과 연결할 수 있을까?" 와 연결하여 영상 아카이브가 하나의 방식으로 공간 지각의 실패의 포용과 공간의 과잉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Archaeology - Foucault - Russell, C. (2018) _Archiveology: Walter Benjamin and Archival Film Practices_.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A camera obscura book). [[@russell_archiveology_2018]] - ## Representation/Body - Emmelhainz, Irmgard, ‘Can We Share a World Beyond Representation?’, 106, 2020, pp, 1-10 [[@emmelhainz_can_2020]] - [[Hal Foster]]가 지적했듯 "상처의 외설적인 생명력과 시체의 급진적 무(無) 사이를 오간다." [@foster_obscene_1996]